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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날들_[필멸]불문율

의식의 흐름으로 뛰쳐나가는 짧은 글 / 마니또 에피소드(53화)까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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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째 쏟아진 폭우 덕에 시야는 극단적으로 좁았다. 공기에 달라붙은 철과 쇠의 냄새에 섞인 물먹은 가죽 재킷 특유의 냄새가 알싸했다. 불현듯 어깨를 때리는 빗방울 몇 줄기. 육중하게 움직이는, 족히 이 미터는 될 듯한 거구가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만들어내는 현란한 그림자. 눈에 잡히는 모든 광경이 필이 최초의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보여준, 프레임이 부족한 달리는 말의 이미지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툭, 툭하고 끊기듯이. 소장님! 외치는 소리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메아리 속으로 사라진다. 젖은 눈과 젖은 발. 모든 것을 조각낼 듯 폭포처럼 나리는 물방울들. 점점이 번져가는 빛, 격렬한 궤적과 함께 사라져가는. 귓가에서 쾅쾅대는 맥박의 소리. 떨리는 손과 미끄러져 가는 절박함. 지금? 그래, 지금. 

 

멸은 그래서 자신의 불문율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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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위 구역에서 그나마 시설이 괜찮다는 모텔의 낡은 방 안에서, 멸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빗소리와 분간도 안 되는 샤워 소리를 들으며 풍경에 녹아들듯 앉아 있었다. 추적은 지루했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3일 째, 소득은 없었으나 내일 접선책과 다시 만나면 무언가 바뀔지도 모른다. 애초에 오지 않는 게 나았다니까. 필이 몰아세우지만 않았어도.

 필. 기어코 여기까지 일을 끌고 온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럴 때마다 그는 간혹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몸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간, 노화되는 세포와 언젠가는 멈추게 될 맥박의 약동. 죽는 자들의 한정된 시간에 조바심을 내며 무언가를 두려워하듯이. 잠깐, 그 사람이 두려워한다고? 그건 말이 안 돼. 멸은 공중에 손을 휘저으며 방금 떠올린 가정을 밀어냈다. 그건 두려움이라기보단.

 그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태생을 통해 모든 것을 걸고 감각하고 받아내고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처럼 지루한 건 질색이라서. 너무 지루한 나머지 모두를 다시 죽게 만들어야겠다던 천재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치던 말. 하긴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 어떤 사람이 이런 체질로 해결사를 해. 이어진 의식의 흐름은 눈앞에 던져진 밴드 조각 몇 개로 인해 끊겼다. 닥터가 가져다주라던데. 지금 하고 있던 생각의 중심, 그 주인공이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여기 와있는 동안 연구 가설을 몇 개 더 실험하겠대.

 

“그동안은 두문불출할 모양이지. 전에 다친 데에 마저 붙여.”

 

 방금 씻고 나온 남자의 손목에는 붉은 시계 모양의 손목 밴드가 여전히 끼워져 있었고, 멸은 왜 그가 굳이 시계 모양을 고집하는지 어렴풋이 생각했다. 단순히 위장하기 쉬워서? 그러나 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시침과 초침 때문에. 우리는 생의 언젠가 앞으로 움직이는 시간을 비틀어 멈춘 뒤 영원을 얻어내는 저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폭탄의 액정에 달린 타이머처럼 0을 향해 카운트를 세고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재기 위해서. 근데 과연 그런 이유로 필이 시계라는 위장을 선택했을까? 본인이 아닌 이상에야 모를 일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안 쳐다봤는데요.”

 “이제 보니까 슬슬 나한테 관심이 생기나 보지?”

 “으악.”


 장단 맞춰줄 생각 안 해? 야, 잠은 소파에서 자. 씻으러 들어가는 등 뒤에 던져지는 말 속에서 멸은 당혹감을 느꼈다.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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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그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불문율을 어길 정도의 관심은 있었던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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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성이 클수록 보수는 비례해서 올라갔고, 그것은 생명이 위협받는 확률도 증가한다는 의미였다. 실상 해결사의 일이라는 것이 불륜을 저지른 상대를 쫓거나 떼인 돈을 찾아주는 사소한 의뢰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거기 속했다. 하루하루의 행운에 의존해 목숨을 부지하는 삶. 멸은 그것이 두려웠고 필은 그것을 좋아했다. 한 발짝만 잘못 딛어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식의 세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떨어지는 줄타기. 그래도 멸은 필의 실력을 믿었다. 그의 철저한, 종교의식에 가깝기까지 한 준비. 방탄복, 총, 칼, 오랫동안 갈고닦은 날렵함과 빠른 상황판단. 그것들은 그의 자산이었다. 

 그래서 이번 의뢰 때도 멸은 필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필을 따라왔다. 의뢰인, 노인은 단아하게 쪽 찐 머리에 깔끔한 정장과 하이힐 차림으로 들어와서 외견과는 반대되는 세월의 풍파에 마모된 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위 구역에서 연쇄 살인이 있어요. 살인이라고 하면 이상한가요? 이제 살인은 없으니까. 미안해요. 나는 좀 오래 살아서 이 개념이 더 편하거든요. 장황한 설명과 함께 요구사항이 이어졌다.


 “정확히는, 무작위로 고른 사람들을 갖가지 방식으로 고문하곤 묻어버리는 자가 있어요. 나는 범인을 알지만, 잡는다고 해도 경찰이 해결해주지 않으리란 것 또한 알아요. 뒷배가 있거든.”

 “그래서,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이놈을 묻어달라고?”

 “아니요. 나에게 데려 와주길 바랍니다. 내 오랜 지인이에요.”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겠어요. 까끌까끌하게 마모된 목소리가 마치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라고 말하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내뱉어졌다.


 “의뢰비는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 하나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정도의 돈은 있으니까.”


 멸이 무어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필은 의뢰를 수락했다. 이 정도면 쉽지. 표적 정보도 다 있고. 무엇 하나 걸고 넘어 지려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너 돈 안 필요해? 보수가 얼마인지 금액은 봤고? 이것 봐. 녀석이 건드린 사람들은 전부 무고하고 가난한 하위 구역 사람들이었어. 이 정도면 천벌 받을 만하지 않아? 말은 저렇게 해놓고 관대하게 처분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 특유의 빈정대는 목소리로 항의 자체를 틀어막고서는, 필은 멸을 끌고 폭우가 쏟아지는 하위 구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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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은 시간이 나면 멸에게 이것저것을 권했다. 보통은 DVD장에서 묵혀두고 있던 별거 아닌 망작을 봐달라던지, 이걸 먹어보거나 이 동작을 해보라는 대단히 사소한 일들(대부분의 경우 멸은 거절했다)이었다. 간혹 필이 선을 넘으려 들 때가 있었다. 표적을 기다리는 차 안에서 멸에게 사격술을 권했을 때가 좋은 예시였다. 왜 싫다는 건데? 배워서 나쁠 게 하등 없어. 너 도덕 소년도 아니라며.


 “사람 해치는 기술은 안 배워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각도로 생각해 봐. 방어한다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방어용 위협 사격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필은 청산유수로 말을 잘했고, 멸은 가끔 그 말에 모르면서 넘어가거나 알면서도 넘어가주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의 문제였다. 타고난 선량함과 조심성으로 위험에 부딪히기보다 위험들을 피하며 삶을 부지해 온 사람 특유의 신중함. 그것은 이미 멸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요소였으므로, 필은 더 보채지 않고 하던 대로 쳇,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총이라도 한번 쥐라고 했다간 그걸로 자살하겠다고 할지도. 필이 아는 멸은 그럴만한 위인이었고 필도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게 멸의 고질적인 문제였고 그것을 보완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필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필은 필요한 대상에 한해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기다릴 줄도 알았다. 

 멸은 그때 필의 시계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다른 누군가가 없다면 둘만이 전유(專有)하게 될 유한성. 그는 필에게 말한 적이 있다. 소장님을 좋아하기는 힘들겠죠. 너무 다르니까. 그 말은 틀리지 않았고, 멸은 필이 어떤 의도로건 무기를 권한 시점에서 그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말 달라. 아마도 이 사람과 근본적으로 가까워질 순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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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예상도 어쨌든 다른 방식으로 깨지기는 했다. 결국, 두 사람만이 공유한 그 유한성,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개인을 필연의 굴레로 엮어 넣은 그 유한성이 멸의 절박함에 불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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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선책, 의뢰인이 보낸 그 사람은 중요하다는 파일 몇 개를 추려서 건네주고는 돌아갔다. 범인을 알고 있다던 말은 사실이었다. 파일 속에는 십여 건에 달하는 실종자에 관한 보고(대부분은 지역 경찰서에만 보고되고 별 심각성도 없이 종결되었다. 하위 구역이란 곳이 원래가 그랬다.)들과 프로파일이 가득했고, 그들의 실종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이점이 하나의 용의자를 가리켰다.

 

 “근데 이게 만약 다 조작된 거고, 사실 저희가 노리는 사람이 죄가 없으면요? 의뢰인이 사람 하나 망가뜨리고 싶어서 다 꾸며낸 거면?”

 “너 정말 가지가지 한다.”


 필은 넌더리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나름대로 멸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굳이 하지 않았을 말들. 입에 발린 구슬림, 상대가 체념할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 이 증거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 녀석 프로파일을 네가 봐야 해. 결정적인 한마디면 충분했다.


 “스무 살짜리 어린애도 피해자야. 사건 정황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실종되었다고 나와 있고, 개는….”


 처참하게 때려죽여서 쓰레기장에 던져뒀대. 제 주인처럼 어린 강아지였다더군. 그 말 한마디에 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색이 바뀌는 것을 찬찬히 즐기면서 필은 속으로 몇 번이고 웃었다. 파악하기 어려운 듯 쉬운 녀석 같으니. 아예 거짓은 아니다. 용의자에게 기소는 안 되었어도 동물 학대로 신고당한 기록이 있으니까. 어쩌면 개를 괴롭히는 녀석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도 총을 잡아볼 거냐고 권유하면 정말로 잡을지도. 하지만 그것을 굳이 실험해보지는 않았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상황에서 권유하면 그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아리를 틀고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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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도 어김없이 비가 쏟아졌고, 둘은 일주일에 걸친 잠복 끝에 표적의 꼬리를 물었다. 지긋지긋하게 많이 내린 비 덕분에 옷에 엮인 습기의 냄새가 빠지지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필은 아끼는 가죽 재킷에 배는 이 물기의 흔적을 싫어하면서도, 시야에 표적이 나타났을 때 들고 있던 우산마저 던지고 제압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허리춤에서 잽싸게 꺼내든 권총의 총구에서 한번 불꽃이 일었고 비에 화약의 냄새가 섞여들었다. 소음이 모든 것을 쪼개버릴 듯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갔다. 

 표적은 덩치가 컸고 노련했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예민한 육식동물처럼. 필이 날린 선방의 주먹에 무너지는가 싶더니 역으로 발을 휘두른다. 물에 젖어 미끄러운 길거리에서 필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고, 멸은 고군분투하는 상사를 지원하기 위해 표적의 뒤로 달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휘둘러진 둔기와 다름없는 팔에 맞아 날아가지만 않았어도 꽤 매끄럽게 표적의 뒤를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


  세차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탕, 탕. 총소리가 다시 터졌고 하얀 사선으로 눈을 가리는 비 때문에 명중 여부가 불명확했다. 무언가가 튕겨 나오면서 내는 요란한 소음. 또 머리야. 머리는 그만 부딪힐 때도 되었잖아! 아파서 나오지도 못하는 비명을 삼키며 멸이 흔들리는 머리를 붙들고 일어났을 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었다고 생각했다. 흐릿한 물안개 속에서 두 개의 덩어리가 뒤틀리듯 겹쳐있었고, 멸은 표적의 손끝에 목을 졸리고 있는 필을 보았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풍경이었다. 소장님! 반응은 없었고 표적은 꽤 강하게 필의 배에 주먹을 메다꽂았다. 퍽. 갈비뼈가 나갈지도 모를 정도의 충격으로 보이는 데도 그것을 맞은 사람은 미동도 없었다. 소장님! 

 그 짧은 순간에 멸은 제 대신 칼을 맞아주던 남자를 생각했다. 나도 같아. 내밀던 손수건과 그 밑의 흉터를 가리고 있던 가죽 장갑. 방탄복이야. 다급하게 말해주던 목소리. 지금도 입고 있을거야. 지금도. 그 생각이 멸을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멸은 목을 졸리는 공포에 대해 알았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이렇게는 죽기 싫어. 필도 그때의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까? 아니면 정신을 잃고 있을까? 왜 그답지 않게 저러고 있지?

 

저 사람이 죽으면 어떡하지?


 그는 죽을 수 있어. 죽을 수 있단 말이야. 다음 순간 멸은 튕겨 나온 것의 정체를 눈치챘다. 빗물에 미끄러져 덩그러니 떨어진, 주인의 손에서 멀어져버린 무기. 필이 자신에게 권하려다가 거절당했던 것, 불문율. 소장님! 외치는 소리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메아리 속으로 사라진다. 젖은 눈과 젖은 발. 모든 것을 조각낼 듯 폭포처럼 내리는 물방울들. 점점이 번져가는 빛, 격렬한 궤적과 함께 사라져가는. 귓가에서 쾅쾅대는 맥박의 소리. 떨리는 손과 미끄러져 가는 절박함. 지금? 그래, 지금. 

 멸은 그래서 자신의 불문율을 깼다. 손이 긁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집어 든 총기에선 탄내가 났다. 쏘는 방법이나 조준하는 방법 따윈 모른다. 배우지 않겠다고 했고 배우지 않았으니까. 손을 떨며 잠시 망설이는 동안 졸려있는 목에서 뿌득,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났다. 쏴버려. 상대가 죽으면, 죽는 몸을 가졌으면 어떡해? 그건 그냥 가정에 불과하잖아. 그런 걸 생각하다가….


소장님이 죽어.


총구에서 몇 번 불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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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어.”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너는 어쩌면 그것조차 없지? 마가 꼈나? 아니면 도덕 소년이 가진 무의식의 발현?”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부 빗나갔다. 애초에 제대로 맞출 거라는 확신조차 없이 쏘아진 눈먼 사격. 하지만 주의를 환기하기엔 충분했고, 표적은 필을 내던지고 멸에게로 달려들었다. 받아내기 힘든 몇 번의 타격이 이어졌다. 미끄러지는 길바닥 속에서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던 멸을 의식을 되찾은 필이 지원했고, 그게 끝이었다. 위험성을 고려해 보수는 2배로 지급되었고 필은 기분이라며 멸의 급료에 보너스를 쳐주었다. 그것을 받고 기뻐하면서도 멸은 물었다. 소장님, 언제나 이런 도박을 했어요?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는 거요. 던져진 질문에 필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태 뭘 보고 겪은거야? 그리고 그게 재밌잖아. 하고 대답했다. 멸은 지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었잖아요. 소장님이 죽을 수도 있었어요. 퍽 진지한 얼굴이 말해온다.


 “역시 나한테 관심이 있지?”

 “말 돌리지 마요!”

 “시작이 반이라잖아. 이 김에 배우는 게 어때.”

 “절대 싫어요. 쏴봤자 또 빗나갈 수도 있잖아요.”


 진짜 권하지 마요. 단호한 목소리가 다시금 못을 박았다. 필은 습관처럼 혀를 차면서도 웃었다. 그는 정말로, 정말로 만족했다. 거의 희열에 차서. 

 멸은 사람을 향해 무기를 썼다. 그로 인해 상대가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졸렸던 목이 쓰라리다. 꽤 심한 멍이었고 마틸다나 바나쳇이 보면 호들갑을 떨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마음껏들 웃으라지. 나는 판을 성공시켰어. 적당한 때, 적당한 상황만 있으면 돼. 그 생각 하나로 벌인 도박.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으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이상 더 만족스러운 일이 어딨어? 잭팟.

 

그 멸이 자신을 위해 불문율을 깼다.


 바로 어제 의뢰인에게 보내지기 위해 마취제를 대량 투입 당한 표적 앞에서 필은 멸을 놀리듯 물었다. 너 아무렇지도 않아? 이 자식 이대로 끌려가면 무슨 일 당할지도 모르는데. 의뢰인이 표적을 어떻게 할 것 같아? 슬며시 떠보듯 꺼낸 말에 뜻밖에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이건 당해도 싸요. 필은 생략된 문맥을 읽었다. 그게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어서 착각한 문맥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이 만들어낸 역작의 만족감 안으로, 그 환희 속으로 잠겨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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