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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날들_[필멸]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2)

※바바라 오코너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줄거리는 크게 관련없음. 개키우미 필멸이 보고 싶어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 / 3편 내에 끝내려고 했는데 과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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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 10~13년 이상의 수명을 지닌 포유강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회색 늑대의 아종, 인류가 최초로 가축으로 삼은 동물.

 필은 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굳이 호불호를 따져서 싫어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그는 냄새나고 번거롭고 귀찮게 치대기까지 하는 짐승들과는 별 인연이 없었고, 굳이 접점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보살핌이 필요한 네발짐승들에게 쓰는 시간은 무가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들에게 사람처럼 이름을 붙이고 정을 주는 행위 또한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정서적 에너지의 불필요한 낭비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살아오면서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관심을 네발짐승에게서 거둔 뒤, 자기가 쓰고 싶은 곳, 오로지 자신의 흥미가 움직이고 시선이 움직이는 곳에다만 전부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 무관심이 이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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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지금 당장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으면 아무것도 안 따질게."

"싫은데요. 자꾸 물건처럼 부르지 마세요."

"너 진짜."

 끝없는 신경전이 오갔고 대화는 점점 살벌해졌으나, 상처를 소독하는 손만은 놀라우리만치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프로답게 섬세한 손놀림으로 멸의 찢어진 오른쪽 팔목을 매만지면서도, 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야. 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대책 없이 움직여?

 "뒷일에 대해선 생각도 안 하고 저질렀지, 너?"

 뜨끔. 동그란 뒤통수가 움찔거리면서도 입을 앙다문 채로 정면만을 응시했다. 그 모양새를 보면서 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멸은 꽤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구겨지듯 앉아있었고, 그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는 것이 필을 거슬리게 하며 그 존재감을 알려왔다. 늙고 병들고 지친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지저분한 갈색 털의 치와와. 목에 건 목걸이는 거의 해져서 금속에 새겨진 개의 이름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다. 필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힘겹게 뜨고는 바라봐오는 까만 눈. 처량한 구석이 가득한 눈매는 멸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필에게는 아니었다. 되려 그 큰 눈이 안쓰럽기는커녕 가증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샐리인지 나발인지 내 알 바 아니니까 이제 여기서 협상 좀 하자."

 "진짜 싫다니까요. 그게 협상은 무슨 협상이에요! 계속 버리라고 할 거면 저도 같이 버리세요."

 또. 또 세게 나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개에 관해선 눈이 돌아가는지. 필은 나름대로 억울했다. 버리긴 뭘 버려. 그 더러운 짐승은 내가 가진 적도 없는 건데. 가지지도 않고서 버린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멸이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이 순진한 듯 제멋대로에 고집만 센 녀석. 사실 다 알고 이러는 거 아니야? 내가 아까 너 때문에 얼마나. 필은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삼켰다. 자기를 버리라고 말하다니. 이쪽은 역으로 버려진 건 자신이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이 작은 뒤통수의 올곧은 고집 때문에. 게다가 하마터면. 

 널 죽일 뻔했잖아.

 처음엔 강도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잠가놓고 나갔을 텐데. 손잡이 근처에 얼룩덜룩한 핏자국이 묻어있는 사무실 문을 바라보며 필은 조용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장전되어있는 금속 특유의 적당한 무게감을 느끼면서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굳이 이렇게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원한 관계인가? 가능성은 있다. 해결사 일을 하면서 쌓아둔 원망만 해도 한둘이 아니고. 당장 같은 해결사였던 마틸다나 바나쳇만 생각해봐도. 설마 그 녀석들인가? 그러기엔 어딘가 어정쩡하고 서투른 구석이 있었다. 그 둘이었다면 프로의 솜씨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어가 매복해있다가 뒤를 쳤을 거야. 이렇게 티를 낼 게 아니고. 누군지는 몰라도 시기를 잘못 골랐어. 제대로 말이야.

 "대놓고 침입했다고 광고를 하는군." 

 필은 심기가 몹시, 아주 몹시도 불편한 상태였고, 지금 걸린 놈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 사는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기분 전환을 위해 기꺼이 가지고 놀아줄 용의가 있었다. 어떻게 시작할까. 우선 총알로 한방씩, 온몸의 관절을 다 부숴놓을까? 무릎부터 시작해서 팔꿈치, 그리고 경추, 척추뼈 마디 하나하나에. 그런 식으로 상대를 가지고 놀다 보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불안감, 공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만한-그렇다. 공포. 필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기분을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을까? 어째서 이렇게까지 불안하고 불편한 걸까? 어째서긴. 멸이 사라졌다. 깔끔하게, 그를 지켜보기 위해 만들어둔 울타리 안에서.

 처음 멸이 자리를 떠버렸을 때만 해도 필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갈 곳이 없어진 그가 돌아올 곳이 자기 아파트가 아닌 이상 이 곳이란 걸 알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나서서 데려올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얼마나 걸릴까? 이틀? 사흘?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일주일 내로는 돌아올 거다. 적당히 구슬려주고 장단 맞춰주면 더 빨리도 돌아오겠지. 너는 언제나 내 시야에 있어야 하니까.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하니까. 너는 이 죽지 않는, 죽음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지 못한 괴물들의 숲에 나를 두고 갈 순 없으므로. 모든 이가 누리는 영겁 속에서 우리에게만 부여된 찰나를 그렇게 쉽게 던져버려서는 아니 되므로.

 필은 줄곧 멸의 팔찌가 보내는 신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요 깜찍한 녀석 좀 봐라. 지금 가 있는 건 어디지? 신호는 한 자리에 멈춘 채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10분, 15분, 30분…. 생각보다 끈덕진데. 그렇게 생각하며 필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액정이 새빨갛게 물들며 진동했다.

 [대상의 맥박이 급격하게 증가함.]

 앞뒤 잴 사이도 없이 필은 뛰었다. 이게 떠서 좋았던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언젠가는 무시했더니 뒷골목깡패들한테 쫓겨서 총을 맞을 뻔했지. 그 직후엔 칼이 날아왔고. 그때 자신이 뒤에서 따라붙어 건방진 올리버 그라함을 뭉개놓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쫓기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잠깐. 녀석이 쫓길 일이 뭐가 있는데? 위협은 내가 다 제거했어.

 안심하려 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멸의 주변에는 기묘할 정도로 위험이 따라다녔다. 대부분은 해결사 일을 시작하고 자신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마치 틈을 노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산재해있던 잠재적인 위협들이 멸에게로 스며드는 것을 필은 무의식중에 느꼈다. 지금도 그러면 어떻게 하지? 필은 숨이 벅차오르는 것조차 잊고 달렸다. GPS 신호는 골목의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잠깐. 맥박이 치솟았는데 어디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만 있었다고? 이건 부자연스러워…. 코너를 돌자 답이 나왔다. 골목 사이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던, 자신이 멸에게 남겨주었던 증명.

 주인을 잃은 채 피투성이 상태로 제 손에 들려있는 노란색 해결사용 팔찌를 매만지며 필은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당장 누구건 족쳐서 이 불안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너는 나를 버리고 갈 수 없어. 우리의 찰나를 그토록 쉽게 버려두고 갈 수는. 무슨 일이 생긴걸까? 사고? 납치? 다쳤을까? 얼마나?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상황에 사무실에 침입한 자가 관련이 있는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분노가 썰물처럼 밀려 나가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단단하게 응축된 새까맣고 차가운 감정의 편린만이 남았다. 만약에 그렇다면.

 총구를 겨눈 채로 무언가의 형체가 누워있는 소파로 향했다. 문밖에서부터 풍기던 피 냄새가 살짝 더 진해졌다.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한 건지 누운 그림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낑, 하고 작은 짐승이 내는 울부짖음이 들리지만 않았다면 필은 앞뒤 재지 않고 그를 쏴버렸을 것이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였지. 잽싸게 상황을 판단하려는 순간 귓가에 잠에 잠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밀려오는 안도감에 필은 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샐리, 괜찮아. 여기는…."

 "……야."

 "…소장님?"

 "이 자식이!"

 스위치가 눌리면서 불이 들어왔고 팔목이 찢어져 피를 흘리면서도 소중하게 개를 안고 있던 멸과 잔뜩 화가 난 채로 꼿꼿하게 서 있던 필의 눈이 마주쳤다. 무겁고 영원 같은 침묵 끝에 또다시 논쟁이 시작되고, 그 와중에도 멸의 상처를 예리하게 잡아낸 필이 응급 키트를 가져오면서 두 사람의 고착 상태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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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이 모든 상황이 있기 4시간쯤 전이었다.

 멸은 필의 완강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집, 샐리가 있다는 바로 그 집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혹시 필이 따라올까 봐 일부러 자신의 집을 거쳐 가는 방법으로 나름의 연막을 치고선. 자신에게 언제나 추적되는 GPS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모르므로, 멸은 그 정도로도 자기 소장을 따돌리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주소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전 뉴스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거주지가 공개되었으니까. 공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주인은 개들을 놔두고 다른 거주지로 옮겨갔다고 들었다. 삭막한 저택은 사람이 살긴 했던 건지 의심스러웠고, 얼마 전에 동물보호단체가 왔다 간 사실을 증명하듯이 더러운 우리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비좁은 곳에 그 많은 개들을. 방치 끝에 결국 굶어 죽은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나쁜 사람.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멸은 더욱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반발심에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사실 멸은 필의 이유도 납득못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 진짜로 납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해결사들은 돈이 안 되는 일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처벌받는다. 해결사 집단이란 곳이 정확히 어떻게 굴러가는 곳인지는 몰라도, 그중 하나인 필의 실력과 그가 행하는 온갖 불법 행위를 보아 단체의 성격도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벌이란 것은 분명 가볍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거의 목숨을 위협당하는 것일 수도. 제아무리 필이라도 그가 죽는 몸을 가진 이상 그런 처벌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 뜻에서 멸은 필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필이 그 이유로만 일을 거절한 게 아니란 걸 알기에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못되게 말하고 못되게 굴어야 하지? 필은 언제나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감추지 않았다. 그가 보호소에 들렀을 때 자신이 권했다가 거절당한 산책, 닥터 노스와의 첫 만남에서 좀비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며 손쉽게 어린 개를 처분하려던 모습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 주변의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척이라도 했을 일이다. 그러나 결국, 필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가진 특이 체질을 제치고서라도 그는 흥미 본위의 사람이었고 구미가 당기는 것 외의 일들은 모두 쓸모없는 취급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하찮게 여겼으므로, 어쨌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하고 멸은 잠시 상사를 쓰레기라고 부른 데 대한 작은 죄책감을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깐. 내가 왜 참회해. 사실이잖아. 그러나 동시에 그가 그 더러운 성미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멸을 위해주고 구해주고 챙겨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 멸은 시무룩해졌다. 자신을 그렇게 챙겨줄 수 있으면서 왜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선 그럴 수 없는 걸까? 그 순간 남자의 고백이 스쳐 갔다. 나는 너를 위해 이러는 게 아니야. 괴물들 사이에 혼자 남겨지는 게 싫은 거지.

 그런 이유라면. 그 스스로 고백했듯이 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그래도 소장님.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고 해도, 적어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서로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상념을 깬 것은 어디선가 울린 낮은 울음소리였다. 헉하고 숨을 들이켠 뒤 멸은 주변을 살폈다. 방금 그거. 다시 한번 으르릉하고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멸은 직감했다. 이건 사람이 아니야. 이건….

 "…샐리?"

 보호소에서 들었던 이름을 내뱉자 반응이 있었다. 쿵쿵 울리듯이 낮게 다가오는 울음소리. 멸은 이런 종류의 소리에 익숙했다. 어딘가 아프고, 상처 입은 것들이 존재를 증명하듯 온몸을 떨며 내는 소리였다. 지난 2년간, 일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수도 없이 들어왔던 슬픔의 언어. 어디서 나는 거지? 멸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담장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던 검은 눈과 맞닥뜨렸다.

"너구나."

 늙은 개는 그저 탁한 눈으로 멸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안녕. 다시금 내뱉어진 인사 끝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갈라진다. 시선 끝에 아무렇게나 놓인 밥그릇, 쏟아진 사료들과 거의 다 말라붙은 물그릇이 들어왔다. 개의 꼬리가 축 처진 채로 흔들거렸다. 흔들, 흔들.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차라리 개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녀석을 훔쳐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막연했고, 필에게도 그저 떠보듯이 이야기해 봤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멸은 모든 개를 사랑해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고, 더더군다나 그 개가 상처 입고 죽어가고 있다면 예외는 없었다. 안녕, 샐리.

"오늘은 좀 어때?"

 볼품없이 다친 데다 연약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작고 따뜻한 덩어리. 허락을 구하듯 담장 사이로 손을 내밀자 개는 조용히 킁킁대더니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천천히 몸에 닿으니 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맥박이 느껴진다. 개 치고는 오랜 세월을 달려온 이 조그마한 심장. 너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남겨진 시간 동안 계속 여기에 혼자 있게 될까. 이대로 이렇게 남겨지게 되는 걸까. 너의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나의 것만큼이나 외로울까.

 아니, 그렇게 둘 순 없었다.

 "같이 가자."

 나랑 같이 가는 거야. 여기에 두고 가지 않을게. 네 마지막을 함께 해줄게. 정말로 이렇게 될줄은 몰랐지만, 너와 만나게 된 이상에는. 

 "가자."

 멸은 몇 번이고 힘주어 말을 건네고 손을 까딱였다. 이리 와, 착하지. 개는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멸의 손에 기대왔다. 멸은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녀석을 들어 올렸다. 손에 느껴지는 무게가 생각보다도 훨씬 가벼워서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터졌다. 어찌나 비쩍 말랐던지, 조금 넓은 담장 틈새로 녀석의 몸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였다. 아주 조심스레 개를 거의 다 빼낸 그 참이었다.

 "거기 누구야!"

 멸은 저도 모르게 놀란 숨을 뱉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관리인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멸은 자신을 바라보는 작고 슬픈 눈을 마주 봤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두진 않을 거야. 가자. 같이 가. 다급하게 빼내던 손이 녹슨 담장에 찢겼고 필이 건네주었던 팔찌가 순식간에 너덜거렸다. 이런. 끊어지면 어떡하지. 다음을 생각하기도 전에 쿵쿵대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멈춰! 쏴버린다! 이게 문제였다. 아무도 죽질 않으니 뒷골목 불량배고 저택 관리인이고 누구나 손쉽게 총을 들고 다닌다. 맞아봤자 죽지 않지만 위협하기엔 딱 좋으니까. 멸은 눈앞에 보이는 산탄총에 맞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개를 넘겨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문 채, 멸은 있는 힘껏 개를 끌어안고 달렸다. 등 뒤로 쏟아지는 욕설과 총성을 뒤로하고서.

 분명 이건 개를 훔치기에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찌 되었건 성공했다. 돌아올 필의 분노를 무시하고서 멸은 일단 일을 저질렀고, 뒷일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사태는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늙은 개 한 마리와 다 큰 성인 남자 둘이 대치하는,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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