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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날들_[필멸]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3) / 完

※바바라 오코너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줄거리는 크게 관련없음.


※주의 : 3편은 반려견의 사망에 대한 묘사와 사람에 따라 혐오를 느낄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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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해가 뜨고 있었고, 창백한 햇빛이 창틈 사이로 기어들어 와 공간의 색을 천천히 바꾸었다. 푸르스름한 빛의 사선이 바닥을 기어올라 발 끝자락에 닿았다. 우두커니 선 채, 필은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소파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긴 실랑이 끝에 기어코 개를 사수해낸 멸이 곤히 잠들어있었다. 이 녀석, 이쯤 되면 이 집이 자기 집이야. 딱히 그래도 상관없지만. 애초에 멸이 사무실에 숨어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단 하나뿐인 스페어 키를 내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너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기억 안 나세요? 소장님이 주셨잖아요. 여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요.) 혹시나 해서 비상용으로 넘겨준 건데. 설마 이렇게 흔쾌히 써줄 줄은 몰랐기에 필은 새삼 뿌듯함을 느꼈다.

 결국 그 사실, 멸이 피난처로 필의 사무실을 선택했다는 명료한 한 가지의 사실이 필이 멸에게 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멸. 자신의 영역이 확고해서 조금이라도 닿을라치면 예민하게 물러서는 작은 동물 같은 녀석이 순순히 필이 내어준 사무실 열쇠를 써서 들어와 ‘여기가 제일 안전할 거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제가 살고 먹고 자는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필의 사무실에.

 그 점이 필은 퍽 마음에 들었다. 그깟 중간 구역 개인 아파트보다야 이쪽 보안이 끝내주긴 하지. 멸은 위기가 닥치자 망설이지 않고 필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자신에게 상처를 보였다. 그러고 보니 팔찌는 다시 해줘야겠군. 그게 그렇게 약해빠진 재질이 아닐 텐데. 작게 혀를 차자 그에 응답하듯 소파 근처에서 낮게 끓는 소리가 났다.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알고 있다. 자연스레 눈을 감고 있는 작은 개에 시선이 갔다. 누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 자명한,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조각나 부서질 듯한. 그것은 지금은 미동도 없이 멸의 곁에서 자고 있었다.

 짐승들은 불멸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온전히 만물의 영장, 인간만이 누리고 향유해야 할 과실이었으므로. 짐승들에게까지 주어지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그 덕에 영원을 사는 주인은 평생에 열 번도 더 개를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물론 필에게는 그게 다 쓸모없는 짓이었고. 기껏 얻어낸 불멸을 네발짐승 뒤치다꺼리에 쓴다고? 진심으로? 그런데 멸이 그 부류에 속했다. 하물며 다른 놈들처럼 영원히 살지도 못 하는 게.

 어차피 금방 죽어 나가는 짐승 새끼들 생명 챙겨주느니 네 생명이나 먼저 챙기지 그래. 필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곱씹었다. 굳이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말을 뱉었다간 멸이 자신을 혐오하고 거리를 두게 될 게 신경 쓰여서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러면 안 되지. 거리를 두는 건 곤란해. 여태처럼 쭉 내 손바닥 위에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가 알았으면 통제 강박이라며 한마디 했겠지만, 필은 본질적으로 남의 눈치나 윤리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해받길 포기했고 이해받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멸이라면 다르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자신은 그에게 이해받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 거야. 그렇게 되어야 해. 그래서 너의 눈치만큼은 봐주는 거야. 필은 대답 없이 잠에 빠진 뒤통수를 보며 다시금 되뇌었다.

 지금쯤 경찰에 관리인의 신고가 들어갔을 터다. 하필 현장을 들켰다고 했으니 상세한 몽타주까지 나왔을지도. 경찰이 멸을 열심히 잡으러 다니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다 늙어빠진 개 한 마리다. 값어치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살지도 장담할 수 없는 추레한 트로피. 광적인 수집광이었다던 주인이 수십 마리의 짐승들을 거느리던 옛 영광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될 정도로 초라한 상패에 불과했다. 저 도덕에 집착하는 녀석이 기껏 저지른 불법이 고작 이거라니. 한편으로는 그 점이 바로 멸다웠다. 아마도 생애 첫 절도. 거창한 신고식은 아니었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니한테 언질이나 해둬야겠어. 혹시 모르니까, 만일을 위해서. 개야 어찌 되었건 알 바가 아니다. 오히려 당장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놔 버리면 편할 것이다. 필이 신경 쓰는 건 오직 멸이었고 그만이 유의미했다. 그래서 그는 당분간만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어차피 급한 의뢰도 없고. 적당히 맞춰주다가 지루해지면 관둬야지. 필은 찬찬히 늙은 개를 들여다보다가 재킷을 챙겨 입곤 사무실을 나섰다. 감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저게 최대한 빨리 죽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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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하지만….”

 “미안해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근데 손쓰기엔 진행이 너무 많이 되었어요.”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멸은 카운터에 가만히 서서 개를 내려다보았다. 케이지가 없어 급한 대로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린 트레이닝복 상의 안에 구겨지듯 안겨있는 개를. 난생처음 온  낯선 곳에서 개는 있는 힘을 다해 울부짖고 몸부림을 치다가 안정제를 맞고서야 조용해졌다. 개보다도 멸이 더 안절부절못하며 한바탕 씨름을 벌인 참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검사받은 건데. 그랬는데.

 “정말 도저히 방법이 없나요?”

 “알잖아요. 녀석들은 저희 같지 않아서 병이나 외부 충격에 취약해요. 그리고 때가 되면 죽죠. 간혹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분들이 계세요. 죽음 자체가 생소하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언젠간 그걸 납득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슬프신 건 이해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고 당연한 거예요.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말하는 내용은 제법 냉정했으나, 목소리만큼은 걱정이 서린 다정한 톤이었다.

 “저희는 죽어가는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분들을 수도 없이 만나요. 누구나 자기의 영원을 떼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하죠. 눈앞의 아이가 불멸이 된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근데 그럴 수가 없어요. 그때마다 드리는 말씀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익숙해질 준비를 하시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사람의 손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진심으로, 유감이에요.”

 학자금을 갚고 나서 얼마 남지 않은 사치비용을 모두 때려 붓는 한이 있어도, 조금이라도 더 버티게 해주려고 계획한 참이었다. 설령 이것 때문에 수치를 무릅쓰고 필에게 다시 가불을 요청하게 된대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비용은 각오한 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각오는 모두 무색해졌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 처방은 드릴 수 있어요.”

 “그럼 그거라도 주세요.”

 직원이 약을 처방하기 위해 카운터를 비우자 병원의 로비에는 멸과 개 둘 뿐이었다.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야가 어둑하게 줄어들면서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멸은 언제나 개를 키우고 싶었다. 상위 구역으로의 탈출을 꿈꾸며 하위 구역에서 쪽잠을 자던 그 시절에도, 자신만의 아파트에서 살게 된 지금도. 하위 구역에도 개들은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으므로. 대부분이 집을 지키기 위한 투견이거나 덩치 좋은 대형견이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하위 구역에서 얕보이기 좋은 작은 개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소중히 귀애하던 자신의 반려견이 린치당해 문 앞에 놓여있는 꼴을 보기에도 좋다는 의미였기에.

 몇 번이고 자신의 개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개들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멸은 위험을 감수하고서 이웃의 투견출신 도베르만을 돌봐주거나 어울려 놀아주곤 했다. 에킨이 몇 번이나 걱정을 담아 말해도(물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끝나지 않던 놀이는 멸이 열세 살이 되던 해에 개가 강도의 총에 죽으면서 끝이 났다. 멸은 자기 덩치만큼 큰 죽은 개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자신의 눈물에 질식할 수 있을 정도로.

 멸은 언젠가의 꿈에서 다시 한번 그 커다란 투견을 안아보았고, 멸의 품속에서 투견은 라일라로 모습을 바꾸었다. 고통스러워하던 녀석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다. 라일라. 언제나 온순한 양을 떠올리게 하는 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던 녀석.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속삭이자 개는 다시금 모습을 바꾸었다. 지친 눈을 한, 비쩍 마른 작은 개. 자신이 무턱대고 훔쳐온. 그 개의 눈이 멸을 현실로 되돌렸다.

 병에 취약해요. 죽기도 하고. 우리랑 달라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 확정 짓는 목소리. 아니, 당신은 모른다. 나는 그 ‘우리’에 속하지 않으니까. 나는 다르지 않다. 자신은 언젠가 사그라들어 사라지는 것들의 무게를 알고 있다. 지금 품 안에 안겨 뛰는 작은 맥박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그러하듯, 에킨은 멸에게 불멸을 나눠주고 싶어 했다. 자신의 영원을 떼어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줄 수 있기를. 눈앞의 아이가 불멸이 된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은 필멸하는 아이를 둔 불멸자 어머니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직접 티 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다. 단지 걱정하는 손짓 하나, 바라보는 눈길 한 번, 너 자라면 중간 구역으로 올라갈래?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하던 그 제안에서 멸이 멋대로 짚어냈을 뿐이다.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직원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맞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에킨의 애정에 감사하면서도 멸은 그 사실을,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올 죽음의 존재를 이미 받아들였고 체념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어릴 땐 그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죽지 않고 존재 자체로 남아있는데 자신만이 이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한 발만 헛디뎌도 균형을 잃고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는 멸의 일상이었고 근본을 구성하는 뼈대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공포는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어쩔 수 없는 납득으로 바뀌었다. 그게 도달한 결론이었다. 이 세계에 돌연변이로 태어난 것은 자신이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조심하면 돼. 멸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언젠간 죽을 거야.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끝맺을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야.

 자신의 필연적인 끝에 대해서는 이렇게 체념해버렸으면서. 멸은 이 작은 개의 목숨에 대해서는, 총에 맞아 죽은 도베르만의 앞에서는, 암에 걸려 괴로워하다 떠나버린 라일라의 앞에서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공평함을 느꼈다. 이건 불공평해. 이 녀석을 힘들게 만든 사람은 영생을 살 거야. 또 다른 개들을 괴롭히면서. 그건, 그건 너무 불공평해.

 땅이 핑하고 돌았다. 넘어지지 않은 것은 가슴께에 닿아있는 개의 온기가 너무 시렸기 때문이다. 두 팔로 버티기엔 너무 시려서 두 다리로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그 감각을 온전히 받아내야만 했다. 개와 처음 마주했을 때 했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너의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나의 것만큼이나 외로울까. 멸은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 없었고 결국 여기 이 자리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개와 함께 서 있다. 멸은 만나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이 늙은 개를 제 몸처럼 사랑했다.

 “여기 있어요.”

 카운터 뒤에서 돌아 나온 직원이 멸에게 종이 봉투를 건넸다. 진통제, 일주일 정도 분량인데 필요하면 또 오세요.

 “그리고 이것도요.”

 직원이 건네는 길쭉한 펜 같은 것, 끝에 숨겨진 주삿 바늘이 있는 그것을 멸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있었다. 보호소에서 일하면서 종종 보던 것들이다. 결코, 자신이 직접 써본 적은 없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쓰는 방법은 키트에 적혀 있어요. 상태를 보아하니 오래 못 버틸거에요. 길어봐야 며칠. 혹시 너무 고통스러워하거든….”

 “포장을 떼어내고 귀밑을 찔러주면 되는 거죠.”

 “잘 아시네요. 작은 개니까 투약량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에요.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불멸자가 되면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는 사실상 그 의미가 사라졌고, 제약회사는 약효의 구성을 바꿔 반려동물 시장을 타깃으로 돌렸다. 약을 구하려면 처방전이 필요했고, 약물의 양에 제한이 있었다. 그뿐이었다. 어차피 실수로 사람에게 투약된다고 해도 아무도 죽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 시간 고통을 호소하고, 대부분이 하루면 털고 일어나는 극소량의 독약. 동물들은 달랐다. 그들에겐 하루의 잠이 아니라 영원의 잠이 된다.

 멸은 무심코 사멸교의 신을 떠올렸다. 불멸을 거두고 죽음을 선사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관념의 신. 멸의 손에 들린 것이 그것과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개들에겐 신이 거두어 갈 불멸이 없었다. 오직 그들에게 예비된 죽음만이 존재할 뿐. 비용은 꽤 비쌌지만 멸은 그것을 아무런 대꾸 없이 지불했다. 지금 품 안에 담긴 목숨값에 비하면, 십수 년을 살아온 무게의 값에 비하면 너무나도 싼 가격이라고 생각하면서.

 봉투를 들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멸은 자신이 기본적인 용품들을 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스스로도 놀랐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들고 다니는 개 간식만으로 샐리의 끼니를 때울 순 없었다.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와야 하는데. 다음 순간 가슴께에서 개가 끙, 하고 움츠러들며 품으로 파고들었고 멸은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검사를 받는 내내 울부짖던 샐리의 모습이 계속해 떠올랐다. 얘는 병원을 무서워해. 거길 다시 가면 싫어할 거야.

 아니, 사실 멸은 개가 아닌 자신이 그곳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들어서는 순간 다시금 안쓰러운 시선이 쏟아지고 선고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선고를 버틸 수 없는 건 개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멸은 생각을 멈추었고, 손이 저도 모르게 지금 가장 익숙한 사람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해결사들은 1분 이내에 전화를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30초도 안 되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어쩐 일로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소장님. 죄송한데…. 돈은 제가 드릴 테니까, 애견용 유동식이랑….”

 “뭐? 다짜고짜 뭘 시켜먹고 있어? 너 오냐오냐해주니까-.”

 “유동식이랑….”

 “너….”

 필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다음 순간 멸이 폭발하듯 울음을 쏟았기 때문에. 도로 한복판에서, 남들이 보건 말건 괘념치 않고, 어깨를 떨고 고개를 숙이고 두 팔로는 힘껏 가슴께의 개를 끌어안고서는. 히끅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도 생생히 전해졌다. 필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 다쳤어? 지금 어디야? 야!

 “소, 소장님.”

 “다쳤냐고 묻고 있잖아. 아니면 쫓기고 있어? 위험한 상황이냐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전.”

 나오지 못한 말들이 목 언저리에서 쾅쾅 울렸다. 한동안 숨죽인 울음을 듣기만 하던 필이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사무실 가 있어. 필요한 거 목록 적어서 문자 보내놓고.”

 멸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지만, 필은 그 끄덕임을 눈앞에서 본 마냥 그럼 끊는다. 하고 나직이 대답하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

 “네가 어제 바로 병원에 갔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을 거야. 고작 하루로는 시한부 판정 못 뒤집어.”

 “알아요.”

 “아니. 모르는 거 같은데.”

 필은 해가 저물 때쯤 강아지용 생필품들을 한 아름 들고선 걸어 들어왔다. 그의 외모에 넘어간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덤을 잔뜩 얻어온 채로. 멸은 사무실 소파에 우울하게 구겨져 있었다. 오셨어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의 청년은 얼굴이 온통 빨갰고 코끝과 눈은 부은 채로 아직도 물기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꼴사나운 몰골을 하고서도, 멸은 필이 사 온 꾸러미에서 유동식을 꺼내 개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기졌는지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우고 잠든 개를 쓰다듬던 멸은 다시 우울한 얼굴로 소파에 구겨져 앉았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필이 휴지 곽을 내밀면서 멸의 한탄이 쏟아졌다. 그게 새벽을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필은 예상외로 인내심을 가지고 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제가 너무 늦은 거 같아요. 제가….”

“왜 그렇게 자기 탓으로 못 돌려서 안달이야. 그깟 네발….”

 멸이 샐쭉한 눈을 하고서는 필을 쏘아보았고 필은 입을 닫았다. 솔직히 말해 개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그에겐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쌍수 들고 환영하면 환영했지. 귀찮고 번거로운 거 빨리 치울 수 있으니까. 고작 이런 거에 울고 웃는 녀석이 신기했을 따름이다.

 필은 멸과 만나고 나서 그가 우는 것을 생각보다 자주 보았다. 첫 번째는 몰가 패밀리의 딸이 결혼하던 그곳,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더니 구석에 처박혀 청승맞게 질질 짜던 모습. 두 번째는 녀석 대신 칼에 맞아주었을 때, 자신이 크게 다친 줄 알고-이것을 회상하면서 필은 잠시간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말 그대로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든-소장님, 어떡해. 하고 연신 부르면서 떨고 있었을 때. 뭐, 이땐 펑펑 쏟는다기보단 그렁그렁하게 달고 있는 것에 가깝긴 했다. 그리고 성가신 짐승을 제멋대로 훔쳐 와서는 다 죽어간다고 우는 지금의 모습.

 그게 뭐 어때서? 죽는 건 당연한 거야. 안 죽는 게 괴물들인 거고. 저렇게 늙고 병든 상태에선 그게 더 행복할걸.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필은 말로는 꺼내놓지 않았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뻔하니까. 사실 일이 이쯤 되니 참던 것을 때려치우고 오히려 멸을 자극해서 그가 화내고 우는 걸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도 않았지만,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참자고, 지금 당장은.

 “…라일라라는 개가 있었어요.”

 필은 움찔했다. 이미 아는 이야기이다. 보호소에서 들었었지.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은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게다가 멸이 자기 입으로 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잖은가. 그래서 필은 입을 꾹 닫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는, 경청하는 태도를 취했다.

 “저를 정말 좋아해 줬는데, 어느 날은 갔더니….”

 이미 떠났더라고요. 아픈 녀석이라 언제 갈 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이어지는 말에 필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아는 개가 또 죽는 게 싫다고?”

 “죽는 건…. 그래요. 녀석은 아프고 조만간 떠나겠죠. 다만 지금 상황에서 제가 제일 무서운 것은 저 애가 당장 내일이라도 고통을 호소하면 어쩌지 하는 거예요.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고통이 끝나지 않아서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그게 뭐.”

 필의 반문에 멸은 조심스럽게 병원에서 받아온 키트를 매만졌다. 필은 슬쩍 보고서는 그게 무엇인지를 확신했다. 그렇군.

 “저는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겪는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제가 나서서 입양을 시킨 아이들도 꽤 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수가 매번 죽었어요.”

 “그럼 익숙할 거 아니야.”

 “아는 거랑 직접 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전 단 한 번도 제 손으로 보내본 적이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제가 굳이 할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이번은….”

 이번은 제 선택이었어요. 데리고 오는 것도, 마지막을 함께 해 주기로 한 것도 모두요. 멸은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되도록 그럴 일 자체가 없길 바라지만….

 “네가 직접 하는 게 무서우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

 “사양할래요. 소장님은 배려도 존중도 없이 할 거 같다고요.”

 “기껏 얘기 들어줬더니 또 인간말종 취급이야?”

 “그래도 고마워요.”

  물건들 사다 주신 것도 그렇고, 제 얘기 들어주신 것도요. 순순하게 내뱉어진 감사 인사에 필은 내심 놀랐다. 틱틱대기만 할 줄 알더니.

 “그러게 너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지금 분위기 다 깨셨어요….”

“빨리 장단 맞춰. 내가 네 장단 맞춰주고 있잖아.”

“싫어요…. 제가 왜요….”

 말 끝이 잦아들고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는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쏟아내고 나니 피로한가 보지. 필은 제 손을 멸의 눈가에 슬며시 가져다 댔다. 저번에 했던 것처럼, 아래에서부터 시선을 맞춰 올리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멸이 움찔하고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피하지 않았어.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필은 최대한 부드럽게, 남은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너 이대로 자면 눈 붓는다. 그 말에 가죽 장갑 너머로 파르르 흔들리는 눈꺼풀이 느껴졌다. 필이 그 유약하고 얇은 막을 매만지며 밑에 깔린 눈의 움직임을 음미하던 그 순간 멸이 몸을 뺐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야. 아직도 손에 남아있는 눈꺼풀의 감촉을 음미하며 필은 그만 자라. 소파 내줄 테니까. 하고 속삭였다.

 “개 걱정도 적당히 하고 네 팔 감염이나 안 되게 조심해. 드레싱 갈기 힘들면 부르고.”

 멸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팔찌는 조만간 새로 줄 테니, 그 전까진 함부로 어디 다니지 마. 괜히 어디 가서 휘말렸는데 해결사 표식도 없으면 곤란해져. 적당한 이유를 대며 멸의 섣부른 외출을 막으려던 시도는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안 돼요.

 “샐리를 데리고 나가야 해요.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산책이 아예 불필요 하단 건 아니에요. 최소한 제가 안고 바람이라도 쐬어줘야 한다고요.”

 “방금 못 들었어? 그러다가 일에 휘말리면?”

 “그럼 소장님이 같이 다녀주시면 되잖아요.”

 “뭐?”

 사실 멸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보호소에서도 자신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던 남자다. 네발짐승 뒤치다꺼리가 어쩌고 하면서 짜증이라도 내지 않으면 다행. 그리고 이번엔 멸이 놀랄 차례였다.

 “…그럼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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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은 순전히 멸을 제 시야에 두기 위해 그것을 수락했다. 멸이 자신의 손을 피하지 않아 기분이 좋았던 덕도 있었다. 어쨌든 멸의 신체적 안위를 챙기는 것이 필에겐 다른 것들보다 훨씬 앞에 있는, 최우선의 목표였다. 그게 냄새나는 짐승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녀 주는 것이건, 다 죽어가는 개 한 마리 봐주는 것이건 그 핵심에 멸이 있다면 필에게 그것은 부동의 1순위였다. 짐승 수발은 멸이 다 드니까 크게 상관없기도 했고.

 타이밍 좋게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고 그 덕에 필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멸을 곁에 두고 감시할 수 있었다. 멸은 아예 제 아파트로 가서 당분간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서는 사무실에 들어왔다. 자기 아파트가 개가 있기엔 너무 좁다는 게 이유였다. 필은 사무실에서 개 냄새가 나는 게 싫다며 온갖 종류의 방향제를 사 왔고, 멸이 개를 목욕시켜 사무실에 온통 개 샴푸 냄새가 났을 때는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욕설을 몇 마디 뇌까렸다. 그나마 개가 다칠까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털을 매만지는 거품 묻은 손이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는 것을 위안 삼아야 했다. 사람에게 닿는 것은 그렇게나 싫어하는 손. 누군가가 저를 만지려고 하면 매정하게 쳐내곤 하던 바로 그 예민한 손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다정함, 최상의 상냥함이었다.

 멸은 거의 필의 사무실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며 지극정성으로 개를 돌봤다. 처음엔 그저 눈을 감고 끙끙대거나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개는 종종 멸에게는 꼬리를 치고 혀를 내밀어 손을 핥기도 하고 아는 척을 했다. 필과는 서로 없는 취급을 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데면데면했지만. 개가 가끔 필을 향해 이를 드러낼 때면 멸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참으라며 개를 쓰다듬어주곤 했고, 필은 너 지금 네 소장님을 무슨 취급하는 거냐고 버럭하면서도 개와 멸을 끝끝내 내치지 않았다.

 단 하나 용납하지 않은 게 있었다면 털이었다. 다른 건 그래, 다 괜찮아. 사실 별로 안 괜찮지만 어쨌든. 근데 내가 아끼는 옷에 묻어있으면, 알지? 필은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단모종의 치와와는 털빠짐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부지런히 돌돌이를 들고 온 집안을 밀어냈고 비싼 재킷이 상하지 않게 손을 떨면서 드레스룸을 청소했다. 개가 아예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해도 언제나 작은 털 가닥이 곳곳에 침범해들어오곤 했으므로. 감당해야했다. 멸은 굳이 아파트가 아닌 사무실에 개를 두고 보기로 한 것도 자신이었으니 필이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장님 성격에 여기 있게 해준 거 자체가 기적이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늙은 개들이 으레 그러하듯 간혹 사무실 바닥에 실수한 용변이 돌아다녔고, 멸은 그때마다 필이 자리를 비운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빨빨거리며 온 군데를 쓸고 닦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무실에 붙어 부지런히 군 덕택에 사무실엔 개의 냄새에 섞여 곳곳에서 멸이 남긴 체취가 나기 시작했다. 필은 개의 냄새에 대한 짜증과 별개로 자신의 공간에 스며든 그것, 멸이 남겨둔 흔적들을 딱히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간혹 드레스룸에서, 자신의 재킷에서도 멸의 냄새가 났다. 고급스러운 가죽 사이에 배어 들은 약한 체취. 얼마간 멸은 필의 스킨을 빌려 썼고 두 사람에게선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같은 스킨향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은 예민하게, 그 밑에 묻혀있는 멸만의 체취를 간파했다. 필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개는 가끔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고 그때마다 멸은 진통제를 투여하고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히 개를 껴안고는 허밍 했다. 베사메, 베사메 무쵸. 지금 이 노래는 설마. 그 구닥다리 노래인가? 나이도 어린 게 왜 저런 걸 불러. 필은 내심 경악하면서도 짐짓 못 들은 척 넘어가 주었다. 물론 가끔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 몰라하는 얼굴을 보고 싶을 때면 허밍 도중에 끼어들어 헛기침하면서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고. 멸은 이런 부분에선 예상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고 까칠하게 왜, 뭐요! 외치면서 귀 끝까지 발갛게 물들곤 했다. 필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귀 끝을 만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가량 이어진 산책도 날이 갈수록 조금씩 바뀌었다. 5일째 되던 날에, 그저 품에만 안겨있던 개가 바닥을 딛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을 때 필은 멸이 또 우는 줄만 알았다. 마치 산타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온통 붉게 상기시키고서는 개의 이름을 부르고 입이 귀에 걸릴듯 환하게 웃고, 그렇게 웃다 못해 거의 울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어찌나 기뻤던지 멸은 심지어 필의 어깨를 붙잡고는 동동거렸고 필은 어색함에 굳었다. 이걸 쓸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못 걸을 줄 알았거든요. 혹시나 해서 부탁드렸던 건데. 산책용 리드 줄을 꼭 붙잡고 그렇게 말하는 말끝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물론 개는 오래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순수한 환희와 기쁨을 오롯이 눈 안에 담으면서 필은 오히려 제 얼굴이 무표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산산이 퍼지는 그 웃음이 그토록 찬란했음에도.

 그 찬란함이 너무 커서 멸은 잠시간 현실을 잊은 듯했다. 개가 먹는 양이 점점 줄어들어도, 차츰 움직임이 없어져도 멸은 근거 없는 기쁨에 차 있었다. 어쩌면 나을지도 몰라. 분명히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어쩌면 녀석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길면 일주일 더, 혹은 한 달, 어쩌면 1년, 2년을 더. 마음 한쪽은 그게 헛된 희망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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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이 받아온 진통제는 일주일 분량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예상 기간이었다. 정확히 6일째 밤에 둘은 개의 신음에 깼다. 잠이 적은 편인 필이 먼저 소리를 들었고, 소파로 다가와 멸을 깨웠다. 야, 일어나. 작은 속삭임에도 소스라치며 일어난 멸이 개를 향해 뛰듯이 달려들었다.

 "…준비해야겠는데."

 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개는 누가 봐도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거품. 떨고 있는 사지. 멸은 머리를 맞은 표정을 하고서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도 현실과 마주하니 정신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멸."

 "……."

 "멸?"

 필은 숨을 한번 들이켜고는 크게 외쳤다. 멸! 그제야 반응을 보인 멸이 멍한 눈으로 필을 올려다봤다. 소장님.

 "병원에 가야 해요. 병원에…."

 "가도 늦어."

 "아니에요. 안 늦었어요. 아직, 아직…."

 "멸. 나 좀 봐."

 필의 얼굴은 진지했다. 무거운 시선이 꿰뚫듯 멸의 눈을 향해 있었다. 어떻게 하는게 맞는 일인지 너도 알잖아. 이러는 동안에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그 말이 맞았다. 점점 뻣뻣하게 굳어가는 몸이 멸의 손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떨었다. 언제 챙긴건지 필의 손에 키트가 들려있었다. 필은 몇 번이고 멸의 이름을 불렀다. 멸, 멸망. 멸. 멸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의식은 어딘가로 떠난 듯한 그 작은 몸을. 필은 키트의 포장을 뜯고 기다란 펜처럼 생긴 주사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힘들면 여기 있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 굳이 네가 할 필요 없으니까."

 "아니, 아니…. 주세요…."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멸은 필이 들고 있는 주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게 주세요. 제가 해야만 해요. 소장님. 그건 제 일이에요. 제 선택이었어요. 제 책임이었어요.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짓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모양새라니.

 "그냥 나한테 넘겨. 그런 죽을상 하지 말고."

 그 말에 멸이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요새 이 꼴을 왜 이렇게 자주 봐. 필은 혀를 차면서도 개에게 손을 뻗었다. 다음 순간 그것을 막듯 멸이 개를 들어 올려 안았다. 이제는 거의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는 몸을. 어떡해, 어떡해. 멸은 자신이 다친 듯이, 자신이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어떡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았다. 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멸. 이대로 놔둬도 녀석은 어차피 죽어."

"하지만, 하지만…."

"그리고 우리도 언젠간 죽어. 그 녀석처럼. 그건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야."

멸은 훌쩍거리면서도 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적갈색의 눈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빛났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만큼은 생생했다.

"이대로 더 고통받게 할 거면 그렇게 해. 그게 아니라면 나한테 넘기고 방으로 들어가. 그러면 최소한 괴로움은 끝나겠지. 정 마음을 못 정하겠다면…."

 필은 아주 고요하게, 소리 없이 멸의 손에 주사를 쥐여주곤 그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감쌌다. 가죽 장갑을 끼지 않은 덕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맨살을 멸은 피하지 않았다. 울음을 참은 덕에 딸꾹질이 이어졌다. 멸이 가만히 있는 것을 확인한 뒤, 필은 멸의 손가락 하나를 투약용 버튼 위에 올려두곤 그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포갰다. 그 덕에 멸의 손이 조금은 덜 떨렸고, 조금씩 안정되었다. 개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멸은 개를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있었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어. 너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아플 거란 것도 알고 있었고, 너 때문에 내 세상이 한 번 무너지리란 것도 알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은 투약구에 닿아있는 개의 몸을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느꼈다. 네가 걷던 걸 기억해. 네가 비틀거리면서도 내게 오던 것을 기억해. 네가 사무실을 너무 더럽혀놔서 치우던 시간을, 네가 먹고 소리를 지르고 토하고 내 품에서 자던 모습을 기억해. 고작 6일, 고작. 그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기억해. 떨림이 서서히 멈추었다. 이대로는 네가 더 아프겠지. 침묵을 깨고 필이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죽음의 무게를 혼자 질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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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만들 수가 없었어요."

 들은 적이 있는 고백이다. 제 스스로 원을 그리고는 그 원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 체질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장벽. 개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서 터진 말에 필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전조등을 껐다. 짙은 담청색의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인적없는 도로는 스산할 정도로 조용했다. 멸은 아까부터 개에게서 벗겨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개들은 달랐어요. 제 얘기를 해도 어디론가 새어나가지도 않을뿐더러 저를 조건 없이 사랑해줬어요. 고작 며칠, 아니 몇 시간을 함께 보내기만 해도. 그게 너무 순수하고 큰 애정이란 게…. 놀라웠어요. 녀석들에게 제 체질은 전혀 상관없었어요. 저라는 사람이 중요했죠. 그래서 사람보단 개들이 훨씬 편했어요."

 딱히 대꾸하지 않으면서 필은 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에 걸친 눈물 끝에 탈진해버린, 지치고 무덤덤해진 얼굴. 눈가가 짓무른 건 아닐지 싶을 정도로 새빨갰다. 

"이번 일은…. 천천히 괜찮아질 거야."

 답지 않게 위로하며 필은 멸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긴 팔의 트레이닝복 아래 개를 훔치느라 났던 상처가 남아있다(멸이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어서 다행이었다. 숨기기는 용이했으니까). 상처는 거의 아물어가고 있고, 흉터는 남지 않을 것이다. 남아서도 곤란하고. 사라져가는 자상처럼 이 개도 멸의 일상에서 서서히 자취를 지워갈 것이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용품들을 처분하고 나면 더 빨리 사라지겠지. 들어갈 때 방향제 한 통이 더 필요하겠어.

 필은 무심코 손을 내려다봤다. 짧은 단모종 치와와의 털이 가죽 장갑에, 정확히 필의 흉터가 있는 자리에 몇 가닥 박혀 있었다. 멸이 아무리 바지런히 청소를 하고 닦아내도 기어코 묻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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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내도록 한 것은 멸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일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상태를 길게 유지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멸이 필에게 애견용품을 부탁했을 때, 필은 목록에 없던 것을 샀다. 직원은 께름칙해 하면서도 필의 부드럽게 웃는 얼굴에 홀린 듯 넘어갔다. 역시. 한 방이라니까. 이 끝내주는 한 방이 멸에게는 왜 안 통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필은 직원이 건네주는 것을 받아들었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흘려들었다.

 필은 오히려 이것이 일종의 자비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도 선심을 쓰는 거라고. 누군가는 모순이라고 말할 것이고 필을 쓰레기라고 부를 것이다. 그는 그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조차 않았다. 자신이 윤리적으로 망가진 건 사실이다. 효율을 중시할 뿐이지. 며칠 안에 끝이 날 것이라 예고된 개의 생명을 기어코 돌보면서 연장시키는 것? 필에게 그것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고통과 괴로움의 연장, 헤어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 안에서 녀석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게 하는 헛된 쳇바퀴와 다름없었다. 비효율적이야. 그럴 바에야 이게 낫지. 도덕군자 소리를 들을 생각은 예전에도 지금에도 없었다. 나는 다만 안식을 앞당겨줄 뿐이야.

 필멸자들의 시대에 그들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싸웠다. 윤리를 앞에 두고, 도덕을 앞에 두고, 이제는 무의미한, 사후세계를 약속한 수많은 종교를 앞에 두고서는. 자신들이 죽을 권리를 획득하고 병들고 아프고 심하게 다쳐 회복 불능이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를 위해서. 필은 자신이 행하는게 그 연장선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아파서 죽거나 하면 멸이 의심할 수도 있으므로, 필은 매 식사에 아주 소량만을 먹여 개를 보낼 생각이었다.

 언제는 그러다가 개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필은 개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게 놀랐다. 그 초연한 눈이,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안다는 듯이 필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짖을까? 아니면 밥을 거부할까? 예상 외로 개는 필에게 달려들지도, 짖지도, 밥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필은 개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지만, 언젠간 네가 될거야. 너는 나처럼 끝이 있으니까. 그것은 개의 속삭임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의 속삭임이었다. 나도 알아.

 그리고 난 그걸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필은 밥그릇에 코를 박고 먹어치우는 개를 내려다보았다. 때가 되면 나는 그걸 받아들일거야. 내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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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의 오른팔에 남아있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필은 사무실에 남아있던 개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정리했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만큼 큰 대형 쓰레기봉투를 들고 와서 모두 쓸어 넣고, 증거 인멸을 하고, 무심히 골목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그러나 모든 것을 처분하는 와중에도 단 한 가지, 멸이 부적처럼 개목걸이를 챙기는 것은 막지 않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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