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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날들_[필멸]For better or worse

Til death do us part의 번외이며 샘플파트입니다.


-총 8편으로 종결된 Til death do us part(http://posty.pe/2bmeg4)의 19금 수위 번외편입니다. 현 공개분량은 샘플 분량(2페이지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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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better or w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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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반려자로 맞아, 좋을 때나 나쁠 때나(For better or worse),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낄 것을 신의 거룩한 법에 따라 신 앞에서 엄숙히 서약합니다.>

-Church of England 성혼 서약문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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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이세요?”

 멸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제가 들은 소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눈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필은 구급상자를 들고 서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농담이겠어? 보여주기로 했잖아.”

 “제가 언제요? 그냥 그런 걸로 친다고 했죠. 그리고 소장님이 굳이 제 상처를 봐주실 이유가 없잖아요. 닥터 노스가 계시는데.”

 둘은 멸이 무려 두 대씩이나 얻어맞은 명치로 논쟁 중이었다. 멸이 맞았다고 했을 때 필은 둔기로 맞은 건 아니냐고 물었었고, 아니라고 하자 나중에 상처를 보여 달라고 우겼다. 갈비뼈에 금이라도 갔으면 어쩌려고 그래. 일개 타박상으로 치부하지 마. 우리 체질로는 작은 부상 하나도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 몰라? 그때 대충 넘긴 게 화근이었다. 안 된다고,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할걸.

 “뭘 그렇게 꺼리는데? 내가 상처 봐주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방금도 봐줬잖아.”

 멸은 머쓱하게 무릎 위에 놓은 손을 꿈지럭댔다. 마디마디에 의료용 드레싱이 감긴 손이었다. 저 혼자 양손을 모두 감기는 힘들어 필이 바로 직전까지 신경 써서 도와준 흔적이 남아있었다. 부드럽고 긴 정적에 파묻히듯 앉아서 힘 있는 손이 조심스레 상처를 봐주고 소독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감아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던 시간. 그 잠시가 준 안온함이 명치를 보겠다고 한사코 우기는 필 덕분에 깨진 것을 깨닫자 원망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거야 상처 부위가….”

 “설마 내 앞에서 벗는 게 부끄러워?”

 필이 경악을 담아 말했다.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얼굴과 목을 붉게 물들였다.

 “소장님이라서가 아니에요. 그냥 상대가 누구건 간에 앞에서 벗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잖아요.”

 “너 자꾸 닥터가 있네 어쩌네 하는데, 그래서 닥터 노스한텐 보여줬어?”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필이 뚱한 눈을 하고선 말을 이었다.

 “닥터가 있으니까 내가 안 봐줘도 된다며?”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알아서 하긴 뭘 해.”

 말하면서 필이 소파에 앉은 멸 앞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멸은 부담감에 몸을 뒤로 물렸다. 한숨이 이어졌다.

 “그냥 확인만 좀 하자. 솔직히 살살 맞은 건 아닐 거 아냐.”

 그건 그랬다. 첫 방은 작지 않은 체격의 멸이 거의 기절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치고 들어왔고, 두 번째 얻어맞았을 땐 눈앞에 별이 보이면서 정말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 제 소장이 다시금 말을 건다.

 “너 거기가 급소인 건 알지? 한번만 보자는 거야. 혹시나 크게 다쳤으면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필이 구급상자에서 각종 의료용품을 꺼내 들었다. 바르는 파스, 뿌리는 파스, 근육 이완제, 타박상용 연고…. 멸은 하나둘 바닥에 놓이는 약들을 바라보면서 퇴로가 막힌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 무슨 변명을 대도 상처를 볼 생각이야. 머리 한쪽이 지끈거렸다.

 큰 상처일 수도 있으니 한번 보자는 게 일리 있는 말이기야 했다. 그런데도 망설여졌다. 묘한 수줍음 같은 것이 팔을 거쳐 등을 내달리다 공기 중으로 도망갔다. 나누었던 짧은 입맞춤과 입술을 핥아내던 혀의 감촉. 그게 입안을 파고들기 전에 키스가 끝난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괜히 얼굴이 홧홧했다. 필은 여전히 제 앞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 있었다. 멸은 그 자세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주어지던 배려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변 사람들의 필에 대한 평으로 미루어보아 그게 저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취급이라는 것도. 필은 저보다도 한 뼘이 컸고, 가뜩이나 앉은 자신을 내려다보면 위압감이 너무 클 테니까. 부러 시선을 맞추려 한 것이다.

 “그냥 보기만 하실 거죠?”

 “다쳤으면 치료까지는 해야지.”

 그리 말하고 필은 손의 상처를 봐줄 때까지만 해도 끼고 있던 가죽장갑을 벗었다. 핏줄이 도드라진 손등이 드러났다. 슬쩍 바라보자 뼈 상태를 봐야 하니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갑을 끼고는 좀 둔해지잖아. 멸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빨리 이 순간을 보내버리기로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만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멸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입고 있던 반팔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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