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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 백업_[알테어말릭]전력 60분, 상처

20140908


큰 창을 통해 들어온 느긋한 한 줄기의 햇빛이 차가운 회색의 바닥에 선을 그으며 반짝였다. 하릴없이 배회하며 공기를 가르고 더듬던 것이 이내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 하얗게 내리 앉았다. 몸의 곧은 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익숙해진 얼굴의 외곽. 다시금 바라보면 그곳에 흔적만이 작게 남은 상처가 자리했다. 굳게 다물린 입을 따라 모로 그어진 흉터. 그 모든 과정을 말릭은 조용히 눈에 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암살자 정복을 입은 알테어는 다른 지부에서 온 지부장들과 노비스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잘한 보고들을 듣고 있었다. 말릭만이 그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알테어가 몇 번 입을 열자 상처도 따라서 비스듬히 움직였다. 말릭은 문득 저것이 언제 생겼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꽤 오랫동안 자리했던 것은 알고 있으나 정작 어떻게 생겼는지, 생긴 지 얼마나 된 것인지는 가물가물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벌어진 일들의 파도를 간신히 넘겨 가며 여기까지 오면서 오랜 기억들 몇은 시간의 풍파를 따라서 휩쓸려간 모양이었다.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별 대단한 이유도 아니었을 테지. 그렇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우에 대해서, 저 인상적인 흔적에 대해서 잊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은근한 충격과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깨닫자 상처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지? 줄곧 꽂히는 시선을 느낀 것인지 드디어 남자가 고개를 돌려왔다. 눈이 마주쳤다.

알테어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얼마 있지 않아 지부장들과 노비스들이 무리 지어 두런거리며 빠져나갔다. 그들이 움직이면서 남긴 먼지의 잔해들이 일어나며 춤을 추었다. 하얗게 조각나는 햇빛 아래에서 스며들지 못하고 산란되는 빛을 뿌리며 흩어지는 먼지의 안개. 그것이 가라앉자 알테어가 말릭에게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말릭은 어딘지 서툰 그 동작에서 어린 노비스 시절의 그가 떠올랐다.

그들이 아직 노비스이던 시절, 아직은 약간 어색하고 미숙하던 손놀림과 발놀림. 엄격한 가르침 아래 연병장의 모래 속에서 뒹굴던 시절, 그리고 아직 카다르가 살아있던 그 시절에 알테어는 이미 또래들을 저만치 앞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알 무알림의 각별한 총애 속에 두각을 드러내던 알테어조차도 가끔은 서툴게 구는 때가 있었다. 주로 감정적인 문제가 얽히거나, 그의 실력이 평가절하된다고 느껴질 때. 그럴때면 으레 알테어는 그 나잇대 남자아이로 돌아가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좀 더 냉정해지는 법을 배운 이후에는 그의 오만함을 망토처럼 두르고 그런 문제들을 도도하게 내려다보며 무시하곤 했지만. 하지만 그가 그렇게 냉정해지기 전에는 걸려오는 도발을 쉽사리 넘기지 못해서-

“아.”

말릭이 작게 낸 소리에 알테어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맞춰왔다. 아까부터 왜 그러나, 말릭? 차분한 목소리가 물어왔지만, 그 근저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깔려있었다. 아직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한, 거리를 두는 태도였다. 그렇게 주춤거리면서도 알테어는 천천히 말릭에게 다가와 섰다. 제법 가까이 다가온 진중한 갈색 눈이 앉아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자꾸만 자신의 텅 빈 왼팔에 가서 닿는 것이 느껴졌다. 바보스럽군.

“지금 기억이 났네.”

“무엇이 말인가?”

“자네 상처.”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릭은 무심코 아직 성한 오른손을 들어 알테어의 상처에 가져다 댔다. 닿는 순간 알테어가 움찔하고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투박한 손가락 아래로 경직된 입술과 끄트머리의 살갗이 하얗게 변한 상처가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행한 충동적인 손짓이었다.

“자네와 내가 아직 노비스였을 때.”

알테어는 실력만큼 자존심도 강했다. 또한, 꽤 자기중심적이기도 했다. 또래의 가까운 친구라고는 말릭 뿐이기는 했으나 말릭은 알테어가 자신을 친구로나 생각하고 있을런지 의문을 품었던 적도 적잖았다. 실제로도 그들은 어릴 적부터의 벗 치고는 어딘가 붕 뜨는 사이였고, 그 분리되어있는 느낌 대부분은 알테어의 유아독존에서 기인했다.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벽. 그런 그에게 한 번 놀란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부정적인 의미의 놀람이었지만.

‘고작 이것밖에 못 하나?’

말릭은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은 노비스들과 훈련을 받다가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그들은 여럿이었고 말릭은 혼자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 자신이 부족해 제대로 된 암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그저 말릭같이 어리고 힘없는 노비스들에게 훈련의 명목으로 화풀이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말릭에겐 사방에서 매섭게 달겨드는 큰 주먹과 발길질에 대항할 길이 없었다.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졌지만, 그저 얼굴을 감싸며 큰 상처가 없기만을 바라는 것밖엔 길이 없었다.

카다르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형이 맞는 것을 볼 수 없어 달려들겠지만, 이들에게 대항하기엔 자신보다도 한참 약했다. 비웃음이 귓가를 때려왔다. 어서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랐다. 뼈를 강타하고 살을 터지게 하는 격렬한 타격음을 가르며 아직은 앳된 목소리가 일갈해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 시선은 말릭을 구타하던 노비스들 뿐만 아니라 말릭에게도 내리꽂혔다. 몰려오는 수치심에 몸이 떨렸다. 저것은 약한 자신에 대한 경멸이었다. 차라리 계속 맞는 쪽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여어, 알테어. 스승님의 총애를 받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또다시 비웃음이 떨어졌고 다음 순간 단검이 날아왔다. 말릭과 노비스들이 그 자리에 굳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 너 미쳤-’

‘분수도 모르는 자들 아닌가.’

멍청하게 서 있던 노비스들이 우르르 달려들었고, 현장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뒤늦게 달려온 카다르가 상황을 정리해줄 숙련자들을 데리고 오고 나서야 일은 일단락되었다. 여럿의 장정은 아직 어린 알테어에게도 버거웠는지 그의 몸도 성한 구석이 없었다. 난투 중에 생긴 건지 입술의 오른쪽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인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살펴보던 의사가 평생을 갈 것이라고 혀를 찼던 그것.

물론 덤벼들었던 다른 노비스들의 상태가 더 심각하기는 했다. 제아무리 알테어여도 이 일에 대해 알 무알림의 꾸중을 피하기는 어려웠고, 말릭과 알테어는 그 후 일주일 간, 단 둘이 연병장의 정리를 도맡았다.

말릭은 그때 알테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테어 또한 그랬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말릭을 분노케 했다. 폭력에서 구원받은 고마움보다, 차갑게 내리 꽂히던 경멸의 시선으로 인한 모멸감이 더 컸다. 치욕이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그 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일은 쉽게 잊혀졌다.

“그렇다곤 해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말릭이 알테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신을 강인하게 바라보는 갈색 눈이 그곳에 있었다. 알테어의 상처 위에 올라간 손이 머쓱하여 천천히 팔을 내리자 되려 저쪽에서 강하게 잡아채 그 자리에 붙박아두는 것이었다. 잡힌 손목이 뜨거웠다. 말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때 자네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알테어의 대답에 말릭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무슨 의민가? 묻는 것에 다시 한 번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 화가 나 있었네. 그것은 내 감정에 따른 독단적인 행동이었어. 자네가 사과나 감사를 표할 일이 아니네.”

“화?”

“물론 어느 정도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비스들을 상대로 힘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네.”

손가락 밑의 입술이 움직이고, 알테어가 만드는 단어와 문장에 따라 따뜻한 입김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소름이 돋아 말릭은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거기 그러고 있는 자네를 보고 나서는….”

천천히 말이 이어졌다.

“제대로 된 생각이 안 되더군.”

말릭의 맥이 탁 풀렸다. 저도 모르게 새는 헛웃음에 알테어가 불안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말릭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알테어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봐왔다. 짓궂은 기분이 들어 말릭은 그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는 그때 말릭을 경멸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경멸이나 모멸의 눈빛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날름거리는 분노의 불꽃을 자제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단단히 서서 자신을 차분히 내려다보는 눈을 보고서야 말릭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좀 더 빨리 대화를 할 걸 그랬군.”

“그건 맞는 말일세.”

알테어가 붙잡고 있던 손에 좀 더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이내 여기저기 굳은살이 밴 손마디 위로, 작지만 뜨거운 입맞춤이 몇 번 떨어졌다. 닿아있는 상처를 느끼면서 말릭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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