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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 백업_[유숲에지]어크 전력 60분, 독수리


트이타 어쌔신크리드 전력 60분. 주제는 '독수리'
참고한 이야기는 ‘라일라와 마즈눈’(레일라와 메즈눈)
http://www.asiastoryroad.com/story200/k-0044.pdf
커플링은 유수프/에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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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들어온 은은한 소음이 공간을 여백 없이 메우고 있었다. 근처 어느 사원에선가 피워올린 향이 날아와서는 코끝을 간질이며 퍼져나갔다. 그 향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향이 퍼진 공기의 색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쪽은 노랑, 저쪽은 짙은 자주색. 그리고 저쪽은….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붕 뜨는 느낌에 유수프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시선의 끝에 편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중년의 멘토가 자리했다. 그 주변의 빛깔만이 앉아 있는 사람의 차분함을 닮아있었다.

그들이 들어와 있는 곳은 본거지에서 멀지 않은 서점의 뒷방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낡은 흔적이 있는 값싼 그림도 함께 팔고 있었다. 그 주변의 다른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서점의 주인은 암살단의 비호를 받고, 암살단에 장소나 정보를 제공했다. 두 사람은 접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기로 한 노비스가 늦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유수프는 다시 한 번 책에 빠진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멘토를 바라보았다.

에지오는 보기보다 책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서점의 그 아가씨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수프가 읽을 수 없는 이탈리아 작가의 책에 대해 에지오는 종종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 중엔 자신의 정적들을 지옥 불에 영원히 타는 걸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복수한 작가의 책도 있었다. 유수프는 꽤나 머리 좋은 방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 대신 펜을 든 사람들의 복수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들처럼 직접 사람들의 등에, 목에, 심장에 검을 찔러 넣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풍문과 이야기로 그들을 나락으로 추방하는 것. 좋은 방식이지. 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어. 남겨질 죽은 자들의 가족에 대해서도, 짧은 사이에 사그라지고 마는 생명의 무게에 대해서도.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새삼스러운 상념들. 유수프는 에지오와 함께 있을 때면 유독 이렇게 새삼스러운 생각들의 무게를 느끼고는 했다. 그것은 같은 공간에 있는 에지오의 존재감과 그 무게감을 유수프가 그만큼 강하게 의식하는 탓이기도 했다. 기어코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를 닮은 차분한 무채색의 자욱을 남겨놓고야 마는 존재. 당신이 나를 학자로 만드는군, 멘토.

문득 시선을 조금 옮기자 에지오의 뒤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에 색은 이미 희미하게 바래버렸고 귀퉁이조차 닳고 있는 그림. 몇 푼의 악체에 내놓는대도 아무도 사지 않을법한 그림이었다. 기껏해야 창고를 정리하는 날 내다버려져 어린 아이들의 불장난을 위한 땔감이나 될법한. 그러나 유수프는 그 그림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잃어버린 연인을 찾는 남자가, 황야의 모래 속에서 꼼짝도 않고 서서 눈을 감고 있는 그림이었다. 유수프를 비롯한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를 그린 그림. 그 남자의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그가 죽으면 시체를 취하기 위해 그 곳에 있는 것일까? 혹은 막막한 사막에서 그 남자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 날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남자의 외로움이 전염된 탓인지 독수리 또한 한없이 외로워보였다. 문득 그림의 독수리와 에지오가 겹쳐졌다. 어쩌면 자신과 겹쳐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유수프는 생각했다. 비통한 사랑에 빠진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곁을 맴돌고 있는 외로운 맹금.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수프가 입을 열였다.

“멘토. 당신은 책이나 이야기를 꽤 좋아하는 것 같군.”

“…젊었을 땐 그런 편은 아니었네만.”

지금은 그렇지. 유수프의 질문에 에지오가 짧게 대답하더니 이내 책에 두고 있던 시선을 유수프에게로 건넸다. 유수프는 늘 탐색하는 듯 바라보는 그의 금빛 눈이 좋았다. 그것은 호안석 같은 보석이나 경계심 많은 맹수의 눈을 연상케 했다. 뒤에 걸린 그림의 독수리 같은.

“전에 멘토가 외국의 책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나도 저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유수프가 손가락으로 문제의 그림을 가리켰다. 이내 에지오가 천천히 뒤를 돌아 그림을 보더니 책을 덮고 내려놓았다.

“나와 잡담을 하고 싶은 건가?”

에지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유수프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이런 사담도 나쁘지 않지.

“저건 우리에겐 아주 익숙하고 유명한 이야기를 그린 그림일세. 이스탄불의 이야기는 아니고, 몽골에 점령당했던 페르시아에서 건너와 여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이야기지.”

에지오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유수프를 바라보았다. 유수프가 말을 이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집안의 반대로 연인과 헤어져야 했다네. 사랑하는 여인은 결국 다른 집안에 시집갔고, 남자는 그 고통에 홀로 황야로 뛰쳐나와 오랜 세월을 헤맸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군.”

에지오가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의 눈이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순간과 어느 공간에 가 있는 흐려진 시선. 그러나 그 눈은 금세 평소의 날카로움을 되찾았다. 유수프는 순간적으로 되묻고 싶었다. 무엇을 생각했나, 멘토? 나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네. 그러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 나왔다.

“남자가 황야를 떠도는 동안, 저 독수리를 비롯해서 사막에 사는 동물들이 항상 그의 비통을 지켜보았지.”

유수프의 말에 에지오의 시선이 독수리에 가서 붙박였다. 그림 속에서 구슬픈 날갯짓을 하고 있는 독수리는 남자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공중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만들어낸 공백이 두 사람의 간격을 메웠다. 예배 시간이 된 것인지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에지오가 반문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나?”

“…마지막 순간에 결국 남자는 잃었던 연인을 다시 만나게 되네. 그 행복감에 두 사람은 끌어안은 채로 하늘로 승천하지.”

사실 이야기의 끝은 그렇지 않았다. 유수프는 그냥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사실은 멘토. 결국 여자는 남편을 따라 이사 간 지방에서 죽어버린다네. 사람들은 연인을 잊지 못하고 떠도는 남자에게 미친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 그 미친 남자는 황야를 떠돌다가 결국엔 그 곳에서 죽지. 그게 이야기의 진실이라네.

그러나 에지오의 깊은 눈을 바라보는 순간, 유수프는 솔직하게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앞에 서서 조용하지만 서글퍼 보이는 황금빛 눈으로 자신을 마주보는 그에게. 그 순간의 에지오는 답지 않게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에게 이야기의 진실을 들려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유수프는 결국 결말을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유수프가 대답하는 순간 에지오는 옅게 웃었다. 아주 고요해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유수프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내 생각지 못한 물음이 뒤따라왔다.

“독수리는?”

“음?”

“남자를 늘 지켜보던 독수리는 어떻게 되었나?”

그만큼 중요하니 그림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에지오가 천천히 그림 속 독수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투박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 움직임만은 섬세한 손가락의 끝이 그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유수프는 ‘물론 멘토가 온 곳에선 그림 속의 모든 것이 상징이 되겠지만, 여기에선-’하고 말을 이으려다 그만 두었다. 어차피 꾸며낸 이야기라면 거기서 더 꾸며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독수리는 남자를 수호하는 정령이 되었네.”

“자신이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도 말이지.”

그 순간 유수프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림 속 독수리를 닮은 것은 에지오가 아니었다. 자신이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와, 그 남자의 곁을 맴도는 독수리. 이 이야기는 결국 멘토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군. 쓴웃음이 흘러나왔지만 그런 유수프의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에지오는 여전히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얻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네. 그 독수리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어.”

절로 말이 흘러 나왔다.

“남자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다시금 정적이 이어졌다. 바깥에서 잔잔하게 울려오던 기도 소리가 멎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터키석을 닮은 유수프의 푸른 눈이 에지오에게 붙박여 있었다. 에지오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또렷하게 유수프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의 무게감이 유수프를 짓눌렀다.

“도착했습니다, 멘토.”

다음 순간, 방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이윽고 서점 주인과 함께 노비스가 들어섰다. 주변에도 비잔티움 놈들이 깔려있더군요. 주의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는 식의 몇 마디 말이 들려왔다. 에지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짜고짜 서점 주인에게 꽤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저 그림을 사고 싶네.”

에지오가 가리킨 것은 방금 전까지 둘의 대화를 이끌고 있던 그 그림이었다. 서점 주인은 자신이 받은 주머니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에지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 그림은 이 정도의 값어치가….”

“그냥 받아두게나.”

주인의 말을 자른 뒤 에지오가 그림을 조심스럽게 접어들었다. 노비스는 자신이 안내하겠다며 제일 선두로 나섰다. 주인 역시 뒤따랐다. 그 뒤를 이어 에지오, 마지막으로 유수프가 나서고 있었다.

“받게.”

갑작스레 내밀어진 것에 유수프가 평소의 천연덕스러움이 가신 얼굴로 에지오를 바라보았다. 에지오는 그저 이야기를 들려준 보답일세. 하고는 어정쩡하게 내민 유수프의 손에 그림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에지오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깊은 미소를 보여, 유수프는 하마터면 그림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까의 고요한 미소와는 다르게 확연히 드러나는 미소였다.

“나도 언젠가는 내 라일라를 찾아야겠지.”

어쩌면 이미 찾았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발을 옮기는 에지오의 뒤에서 유수프가 큰 낭패감을 느끼며 서 있었다.

에지오는 원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서점의 아가씨, 혹은 집시에게서 미리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야기의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의 맺음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어쩌면, 에지오에겐 그 편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유수프의 입가에 자조의 웃음이 떠올랐다.

“나를 민망하게 하는군, 멘토.”

잽싸게 평소의 장난스러움을 되찾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유수프가 에지오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그림을 허리춤에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일행의 위쪽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았다. 너무 멀어서 어떤 새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유수프는 단호하게 그것이 독수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유수프는 에지오의 뒷모습을 보며 홀로 속삭였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나는 결국 당신의 독수리가 되겠군. 그렇지 않나?

이스탄불의 더운 햇빛이 그들의 머리 언저리에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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