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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 백업_[알테어말릭]추방자들의 낙원

20150112

*5회 케스에 배포했던 배포본을 공개합니다. 커플링은 알테어x말릭, 총 8p(표지 포함 12p)
웹공개 버전에서는 가독성을 위해서 문단 사이에 엔터를 많이 넣었습니다.  
배포본은 현장에서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 추방자들의 낙원 •
Assassins's creed Altair Ibn-La'Ahad x Malik Al-Sayf fanbook by RODO


사위가 조용했다. 내려앉는 새벽 서리의 운무(雲霧)가 내는 사각거림과 타오르는 모닥불이 내는 작은 신음, 곳곳의 모래가 흘러내려 소용돌이치는 소리만이 세계가 온전히 잠들지 않았음을 알리는 속삭임이었다. 하늘이 짙은 보라색과 감청색을 두르고서는 넓게 펼쳐진 벌판 위에 자리한 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말릭은 꽤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잠들지 않았다. 낯선 공기가 주는 두근거림이 틈을 주지 않은 탓이다. 임무에 나서는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그러했다. 아니, 사실 매 임무 때마다 말릭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노비스 태를 아직 벗지 못한 것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그는 적어도 동료들과 노비스들이 자는 동안 자신이 주변을 경계할 수 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비록 다음 날 충분히 쉬지 못한 몸이 찌뿌둥하게 결리는 식으로 무언의 호소를 하고는 했지만.

몸을 일으키자 오랫동안 고정된 자세로 앉아 있었던 덕에 경직된 무릎이 시렸다. 대충 주물러주고는 곁의 무너진 담벼락 너머에서 세상 모르게 잠든 노비스들을 바라보았다. 낮에 미리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시켰는데도 곤히 잠든 모습들에 헛웃음이 나왔다.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난 탓이다. 카다르는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이 들었다. 말릭은 툭하면 잠든 사이 기습이라도 당하면 어쩔 거냐고 반쯤 진심을 담아 동생을 놀렸지만, 이미 단잠의 맛을 아는 동생을 다시 교육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녀석도 지금쯤 이렇게 잠들어있으리라.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만 있다면, 며칠 후에 다시 볼 수 있을 얼굴이다. 말릭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한데 모여 잠든 사람의 수를 세자 딱 한 사람이 모자랐다. 누군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말릭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작은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의 오만함을 벽처럼 두르고 다니는 사내는 아마도 내일의 경로를 미리 점검하기 위해 정찰을 돌고 있을 것이다. 말릭은 심란함에 이마를 짚었다. 단독 행동은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해도 사내에겐 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한 것인지도. 한편으로는 말릭을 비롯한 일행이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내의 실력을 본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에 말릭은 괜히 기분이 상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

말릭은 쓸데없는 추측은 하지 말자며 자신을 타이르곤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폐허 더미 속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스쳐 가는 바람만이 무너진 벽 틈새를 부산하게 움직이며 스산하게 으르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밤의 그늘 밑에 누워있는 마을은 낮보다 더 차갑고 무거워 보였다.


마시아프에서 출발한 지 이틀, 오랜 이동 끝에 도달한 곳은 곳곳에 무너진 집터가 널린 폐허 지역이었다. 사막의 혹독한 모래 폭풍은 주변 지역을 모두 불모지로 만들었고, 그곳을 개척하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매년 더 강해지는 자연의 무력 앞에 힘없이 꺾여 달아났다. 모래가 집어삼킨 마을 곳곳에는 침식된 기둥들과 발을 들이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래 늪만이 남았다. 아주 오래전 마지막 주민까지 이주해버린 이후 제법 오랫동안 유령 마을로 남아 있었던 마을은 어느 순간부터 유배지가 되었다. 형을 살아야 하는 죄인이, 정치적으로 제거된 정적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해 더는 공동체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자들이 기약 없는 방황 끝에 오게 되는 곳.

“그래서 ‘추방자들의 낙원’인건가요?”

“이 지역을 부르는 이름을 묻고 싶은 거라면,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지.”

“낙원과는 도통 거리가 먼데요.”

“조심하도록. 이 주변은 폭풍도 잦고 유사(流砂)도 많으니까.”

흠, 추방자는 고사하고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네요. 중얼거리는 노비스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말릭은 무너진 건축물들의 부연 윤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으로 유배를 오거나 추방당해 오는 사람의 발길조차도 꽤 뜸해진 지 몇 년이 지난 마을은 종종 이렇게 암살단의 중간 경유지로 쓰이고는 했다.

일행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무덤 같은 잔해들을 거쳐 가장 규모가 큰 폐허에 도착한 것은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을 무렵이었다. 노비스들은 임무를 위해서라면 아직 한참을 더 걸을 수 있다며 흥분해있었고,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언제나 여유를 주지 않고 홀로 앞서 가던 사내였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한다.”

“하지만….”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노비스 하나를 매서운 눈빛 하나로 제압한 알테어는 하고 싶은 말만을 딱딱하게 내뱉은 채 등을 돌려 걸어갔다. 기가 죽은 채로 저들끼리 쑥덕이는 어린 노비스들을 혀를 차며 바라보면서도, 말릭은 알테어의 결정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폐허를 통과하고 나면 3일 내리 민가는커녕 제대로 된 식수나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운 광야의 연속이다.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며 동태를 파악하고, 혹시나 올지도 모를 식량난에 대비하자는 알테어의 의견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다만 옳은 말을 해도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그의 천성 상, 잔뜩 기분이 상한 노비스들이 모여앉아 너도나도 알테어의 험담을 나누게 되는 귀결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말릭은 고개를 저으며 알테어를 돌아보았으나 사내는 꿈쩍도 않고 폐허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알테어의 흰 옷자락과 함께 붉은 띠가 짙은 황금색의 모래와 한 덩어리가 되어 펄럭였다. 폐허 위에 떠 있는 하얀 잔상. 말릭은 그것이 퍽 유령 마을에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공허만이 남은 터 위에 올라앉은 하얀 유령. 어쩌면 형제들 사이에서 겉도는 그야말로 추방자들의 낙원에 어울리는 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말릭.”

순간 이름이 불려 말릭은 당황했다. 생각을 꿰뚫린 기분이었다. 알테어는 서늘한 눈으로 말릭을 바라보았다. 선명한 금빛의 동공. 마주치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는 눈이었다. 물론 말릭은 그렇지 않았지만. 종종 이렇게 눈을 마주칠 때, 말릭은 그와 자신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오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겨를이 없었지만.

“왜 그러나?”

“이리로 와 보게.”

“…도적인가?”

모래에 잠긴 기둥 위편에 선명한 흠집과 말라붙은 핏자국이 있었다.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이었다. 그것들은 말릭을 바짝 긴장하게 했다.

“인적이 드물었을 텐데.”

“우리도 여길 경유지로 쓰지 않나.”

다른 이들이라고 쓰지 않을 이유는 없지. 제법 담담하게 말하는 알테어에게 말릭이 물었다.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하나?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알테어가 생각에 잠긴 눈치로 먼 지평선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임무에 전적인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릭도 그것을 잘 알았다. 오직 그 원칙만이 수차례의 임무에서 형제들과 자신의 목숨을 무사히 보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도 꼭 일행의 반절 정도를 잃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반절이면 적은 희생이었다. 말릭은 다시금 알테어를 바라보았다. 모래바람이 불어왔기에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다른 자들을 준비시켜둬.”

툭 던지는 명령조로 말을 내뱉고는 알테어는 다시 멀어져갔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으나, 알테어는 일행 중 실력도 경험도 가장 풍부한 자였다. 이런 상황에선 그에게 굽혀주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비스들 틈에 끼어 알테어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 또한 추호도 없었다. 부글거리는 속을 간신히 가라앉히는 말릭에게 한 마디가 더 던져졌다.

“오늘 밤은 단단히 마음먹고 있게.”


새벽은 여전히 고요했다. 침묵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말릭은 시야에 잡힐지도 모르는 사내를 찾고 있었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이 뻑뻑했다. 찬 공기가 뒷목을 스치고 지나가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일었다. 쓸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알테어를 찾았지만, 어딜 간 것인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의지가 없는 사내를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알테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투덜거림이 나오려는 찰나 발치에 무언가가 채였고, 말릭은 소스라치며 발을 헛디뎠다.

“-헉!”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말릭은 재빠르게 검을 꺼내 들었다.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영이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남자였다. 두 눈은 하늘을 향해 크게 치켜뜬 상태였다. 말릭이 걷어찬 것은 남자의 무기였던 모양으로, 남자는 이미 검게 굳은 피 웅덩이 속에서 팔을 양쪽으로 넓게 벌리고 있었다.

‘죽은 건가?’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누워 있는 남자는 어떻게 봐도 죽은 지 제법 지난 상태였다. 그래도 말릭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조용히 들고 있던 검의 끝으로 말릭이 남자를 찔러보려던 순간, 무언가가 말릭의 다리를 옭아맸다.

“……!”

낭패다. 든 생각은 그 한 단어였다. 헛발질을 하면서 디디고 선 곳이 하필 유사(流砂)라니.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나마 아직은 한 발이었지만, 서둘러 빠져나오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되리란 생각이 들어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때일수록 가만히. 침착해야 해.’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본능적으로 몸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강한 생존 욕구가 비집고 나와 몸을 비틀게 했다. 빠져나가려 할수록 더 강하게 옥죄여 오는 모래 늪에 말릭은 자신이 공황 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모래는 빠르게 말릭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카다르.’

동생의 이름이 떠올랐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이러다간 주마등까지 보겠군. 가만히 서서 심호흡을 시도했지만, 폐가 터지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그만두었다. 절로 눈앞이 흐려졌다.

‘노비스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어.’

지금이라도 소리를 치면 누군가가 듣고 달려와 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군만이 아니라 적군까지 불러오는 결과를 낳는다면? 말릭은 고개를 들어 자신이 걷어찼던 시신을 바라보았다. 죽은 지 꽤 지난 시체이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은 아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팽팽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 임무들 이후 오래간만에 느끼는 죽음의 공포 앞에 몸이 뻣뻣하게 굳고 있었다. 무언가가 찬 밤공기를 가르며 코앞에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잡게!”

형제들 사이에서 담요 대용으로 쓰이는 천이었다. 말릭은 저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불렀다. 떨리는 손으로 낡은 천을 붙잡자, 맞은 편 끝을 붙잡은 사내가 보였다. 말릭은 이를 악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알테어 역시 천을 세게 한 번 감아쥐고는, 천천히 말릭을 끌어냈다.

느리지만 조심스럽게 몸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알테어가 말없이 손을 내밀고는 말릭이 맞잡자마자 강하게 이끌었다. 말릭은 그 힘에, 단단하고 곧은 손에 큰 위안을 얻고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 풀린 말릭이 쓰러지듯 알테어를 향해 엎어졌고, 제 쪽으로 당기던 무게를 못 이긴 알테어 역시 말릭을 받아 안는 모양새로 뒤로 넘어졌다. 한동안 두 사람이 내뱉는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폐허 위에 울렸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위기를 모면한 찰나의 형용할 수 없는 안정감이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맞닿아있는 심장 고동이 주는 평안함이 그렇게나 클 수 있다는 것을, 말릭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유독 귓전에서 맴돌았다. 두 사람이 아무렇게나 겹쳐져 있던 몸을 급히 추스르고 일어난 후에도.

그리고 말릭은 어쩌면 그 닿아있는 고동 소리 안에, 단순히 살아남았음에 대한 안도에서 오는 감정뿐 아니라 다른 것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검은 밤이 뒤덮은 황야 위를 하얀 두 그림자가 걷고 있었다. 말릭은 그저 조용히 알테어의 뒤를 따랐다. 알테어를 따라 걸을수록 자신이 조우한 시신과 거의 같은 처참한 모양새를 한 사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설마…. 자네가 처리한 건가?”

“아니. 상태를 보게. 다들 죽은 지 며칠은 지났어.”

과연 그랬다. 자신이 본 남자처럼, 온몸이 돌처럼 굳은 채로 검은 피 속에 드러누운 사람들의 몸에서 이따금 죄인에게 새기는 일종의 낙인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말릭은 깨달았다.

“모두 추방된 자들이야.”

“그래.”

“요즘 이곳으로 유배 오는 자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죽음으로 이곳은 추방자 없는 추방자들의 낙원이 된 셈이었다. 알테어는 별말이 없었다. 다만 작게, 서로 분란이 일어나서 이렇게 된 것 같아. 하고 속삭였을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알테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주변을 정찰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낮의 핏자국이나 싸움의 흔적들도 모두 이들이 만든 것 같네.”

“생존자는 없나? 우리 일행은 안전한 건가?”

“일단은.”

이번에도 대답이 짧았다. 두 사람 다 말을 않자 다시금 조용해졌고, 말릭은 차분히 말을 골랐다.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따로 있었다. 주저하던 입이 열렸다.

“내 생명을 구해준 일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추방자들의 낙원이라.”

엉뚱한 답이 돌아와 말릭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알테어를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솔직하게 감사를 표한 것이었는데 되려 저런 답을 하다니. 나를 놀리고 싶은 건가? 미간을 찌푸리자 알테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낙원이란 건 원래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

“왜지?”

말의 뜻을 인식하기도 전에 반박이 먼저 튀어 나갔다. 그럼 자네는 낙원도, 천국도 믿지 않나? 우리 형제들이 죽어서 갈 곳조차 도? 알테어는 생경한 눈으로 말릭을 마주 봐왔다. 말릭은 멈추지 않았다.

“여긴 저런 자들이 모여서 나름의 천국을 만들려던 흔적이야. 그것을 잊으면 안 되네. 저들은 나름대로 잘 풀리게 하려고 애썼을지도 몰라.”

“어디까지나 자네의 추측일 따름이야.”

“비록 이들이 이렇게 처참한 끝을 맞이했고, 자네가 내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지금 이곳이 낙원이라고 생각하나?”

그 순간 알테어의 눈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도 진심이었기에 말릭은 진이 빠졌다. 그는 진심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이 폐허가 낙원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릭은 낮에 알테어야말로 이 외로운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속으로 황급히 정정해야만 했다. 그는 이곳에 어울리기엔 너무나도-

“나는 자네가 낙원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떨어진 말릭의 말에 알테어가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돌아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긴 낙원이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그렇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도 이젠 아네. 넘쳐흐르는 피와 죽음의 그림자, 폐허만이 남았지. 자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늘 그런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이야.”

알고 있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자네에 대해선 틀리는군. 게다가 아까처럼 짐만 되고 말이지.”

마지막은 반쯤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죽은 추방자들과 같은 운명을 맞을 뻔했다. 거기다 그 운명에서 자신을 구해준 자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자책. 그것을 듣고 있던 알테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어쩌면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인가?’라는 의미로 보이기도 했고, ‘그게 애초에 무슨 소리인가?’하는 눈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잠시나마 알테어의 말문이 막힌 것에 말릭 역시 당황했다. 다시 침묵. 천천히 입을 연 알테어는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답을 내놓았다.

“아니.”

“?”

“아까 자네가 거기 빠졌을 때.”

알테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엔 머뭇거리며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었다. 밤공기에 차가워진 손이 다가왔다. 자신을 강하게 잡아끌던 손이다. 마치 술을 단숨에 들이켠 듯 속이 홧홧했다. 가슴이, 입안이, 손끝이 간질거렸다. 그것이 마치 불쾌함으로 느껴질 지경이었기에 말릭은 자신이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순간 다가온 입술이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말릭은 울컥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어째서 이것을 거부할 수 없는지도.

이곳은 추방자들의 낙원이었다. 낙인찍힌 자들이 보내지는 곳. 결국엔 실패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보내지는 곳. 어차피 그런 곳이라면 터부시 되는 일 하나 둘 쯤은 용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떠올려놓고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말릭은 그 자리에 서서 고요한 입맞춤을 받아내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알테어는 이곳이 낙원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둘에게만큼은 침묵의 성채로 둘러싸인 낙원이었다.
먼 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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